세이유는 종합 슈퍼이기 때문에 계란, 우유에서 채소, 의류 등등 없는 것이 없었다. 또 가격도 무척이나 쌌기 때문에 일요일에 가면 동네 주부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내 아내는 특이한 구매 패턴이 있었다. 세이유에서 우유나 치즈 같은 가공식품을 사고, 과일이나 채소는 세이유 바로 앞 구멍가게에서 사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 가게지 한 10평쯤 되는 공간에 채소나 과일박스가 빙 둘러 진열돼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입구에서 들어가 물건을 바구니에 담아 출구에서 계산하는, 그것도 현금만 받는 지극히 불편한 구조였다. 한 사람이 통로에 서 있으면 다른 사람이 지나갈 수 없어 사과를 사고 싶은데 이미 지나간 자리에 있으면 다시 한 바퀴를 빙 돌아 와야 하는 가게였다. 더구나 세이유에서 이미 일주일치 식료품을 가득 샀으므로 여러 개의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다니거나, 밖에서 누군가가 봉지를 들고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이런 불편하기 짝이 없는 가게에 항상 주부들이 가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과일이 신선하고 너무 싸거든" 아내의 말이었다.
이 채소가게 때문에 세이유의 과일과 야채 코너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었다. 사는 사람이 없으니 제품 회전율이 떨어지고, 제품 회전율이 떨어지니 채소의 신선도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세이유로서는 대안이 없어 보였다. 구매 담당자는 별 의욕이 없어 보였고, 본사를 통해서 들어오는 복잡한 구매 경로 때문에 바로 당일 새벽에 어딘가에 가서 과일을 들여오는 옆 구멍가게를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강자의 약점을 파고드는 '강육약식'의 경제학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 구멍가게 때문은 아니겠지만 세이유는 실적 감소에 고전하다 결국 미국 월마트에 매각되었다.
최근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를 위한 대형마트 규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강제적으로 대형마트가 휴무하는 날에도 골목상권 가게들의 매출이 증가하지 않는 정책적 실패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패는 '강육약식'이 가능한 경쟁구조를 만들지 않은 데 있다. 만일 구멍가게의 채소나 과일이 세이유와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떨어진다면 일본 주부들이 그 가게로 갈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구멍가게가 품질이나 가격에서 대형마트에 밀린다면 거기로 갈 소비자는 없다. 대형마트를 강제적으로 문 닫게 하면 그 수요가 자동적으로 소규모 가게로 흘러간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발상이다. 세타가야구의 주부들은 세이유의 휴무일을 귀신 같이 꿰고 있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