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을 펼치면 작가의 친절하면서도 선언적인 설명이 등장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당신이 이 소설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는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의 오늘"이라고 소개한다. 작품 속 '10년 뒤 오늘'의 상황은 암울하다. 핵무기 사용, 자연재해, 자원고갈, 전염병 등으로 인류는 대위기를 겪고,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려고 애쓴다. 이 와중에 프랑스에서는 대통령 직속 비밀기관이 나서서 과학자들을 끌어모은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신종 인간을 탄생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서다.
다비드 웰즈가 속한 연구팀이 탄생시키려는 신인류는 '에마슈'이다. '에마슈'는 초소형 인간을 가리키는 '마이크로 휴먼'의 두 문자(M, H)를 프랑스식으로 읽은 작명이다. 이들은 '소형화, 여성화'가 인류의 미래라고 믿는다. 콩고의 피그미족, 터키의 아마존 여전사가 몸집을 줄이고 암컷 비율을 늘린 덕분에 면역력과 적응력을 높여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이런 연구에 가담한 과학자들의 의도와 달리 권력층은 세균탄이나 핵폭탄을 만드는 기지에 침투시킬 목적으로 신인류를 이용하려 한다.
이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키 17cm의 초소형 인간이 탄생한다.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된 에마슈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에마슈와 인간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베르베르는 상상의 날개를 편다. 또 지구를 의식있는 존재로 인격화한 '가이아'의 독백도 작품 곳곳에 삽입해 인류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전달한다. "저들은 매번 똑같은 이유로 그것(석유)을 내게서 훔쳐간다. 목적은 그저 분주하게 움직이는 데 사용하기 위함이다. 대개의 경우 저들의 목표는 저희의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라고 가이아는 인간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제3인류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만3800원 )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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