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소설의 귀환이다. 중견작가들과 대형 작가들의 작품이 줄을 잇고 베스트셀러 목록 상단을 가득 메우고 있다. 출판계도 서서히 소설 열풍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런 소설 열풍에 편혜영 작가(사진)의 창작집 '밤이 지나간다'(창비 출간)가 새로운 구원투수로 등장, 흥행 릴레이를 이어갈 지 주목된다.

편혜영 작가.

편혜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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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작가는 특유의 건조하고 치밀한 문장과 밀도 높은 서사로 높은 필력으로 독자와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동안 편 작가는 장편소설 두권과 단편소설집 세권을 교차하 듯이 번갈이 내놓았다.

"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는 늘상 바뀐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과 다르지 않다. 평생 해야할 작업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잠시 숨고르는 동안 단편을 작업하고, 어느덧 작은 이야기들이 큰 이야기로 성장할 때 장편에 들어간다."


이번 창작집 '밤이 지나간다'는 8편의 단편으로 구성돼 있다. 각 단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비밀'과 '파국'이다. 누구나 마음 속 서랍장 깊숙이 숨겨 있는 비밀에 대해 어떤 이는 차라리 속시원히 꺼내놓고 죄의식을 털어버리려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비밀이 드러나 지탄을 받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편 작가는 그 비밀을 치밀하고 건조하기조차 한 문체로 하나씩 끄집어내 불안과 고독의 근원을 탐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주인공들의 삶에 이입되기를 꺼린다. 주인공과의 거리두기에 대해 편 작가의 생각은 이렇다.

[책과 저자]"파국과 희망에 대한 기록"..편혜영 '밤이 지나간다' 원본보기 아이콘

"거리 두기는 소설속의 주인공들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그들이 처한 삶의 여건들을 살피는데서 비롯됐을 수 있다. 대체로 주인공들은 사회적 약자다. 그들에게 동화돼 함께 아파하고, 위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삶의 환경을 함께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부득이 주인공들과의 거리 간격을 유지하게 된 것 같다.모든 작가가 자신의 분신인 주인공을 사랑하는 것처럼 내 방식의 사랑법일 수 있다."


그렇다고 각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비밀의 어두운 내막에 가두어둔 채 결코 버려두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한결같이 파국에 직면해 있다. 아들 때문에 재산을 잃고 철거 앞둔 아파트에서 불편한 몸으로 삶을 연명하는 노년의 여인(야행), 삶을 일시에 파괴할만한 비밀을 간직한 중년의 남자(밤의 마침), 말년에 찾아온 여동생을 요양원에 보내고 노년의 허허롭게 사는 노인(비밀의 호의) 등등 모두가 모종의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소설은 단순히 아픈 이들을 위무에 그치기 보다는 그 아픔을 치열하게 진단하고자 하는데서 돌파구를 찾는다. 그 돌파구는 비밀을 가진 자들이 끝내 파국에 이르러서야 보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는 더 잃을 것도 없으니까. 결국 파국은 '희망'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나와 닮은 듯 다른 생명들이다. 이번 소설속의 주인공 중에는 비밀이 없어서 삶이 피폐하다고 여기는 이도 있다. 이들을 섣불리 위로하고자 할 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작가가 모든 삶을 구원할 수 없다. 나는 그 점을 경계하고자 애를 썼다."


그래서일까 ? 주인공들이 애써 찾은 희망은 미약하다. 또 희망에 크게 감격하거나 흥분하지도 않는다. 또한 비밀을 간직하고도 그 비밀 때문에 순식간에 자신을 무너뜨리지도 않는다. 비밀을 지니거나 파국으로 가는 것 혹은 희망찾기는 모두 한통속인 까닭이다. 따라서 작가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살피고, 그 비밀이 내재된 환경과 밀도 있게 교류하려고 애쓴다.


그런 현실에서의 '희망 찾기에 대해 조연정 평론가는 "일상의 삶 깊은 곳에 내재돼 있는 파국의 조짐을 묘사하며 불안을 축조해낸 편혜영의 소설은 이제 파국의 끝장에 다다른 죽음과도 같은 허무의 공간을 그리며 그 안에서 거꾸로 삶의 기미들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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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작가는 지금 다음 창작집을 모색 중이다. 그런 준비과정에 대해 "늘 한 작품을 마무리하면 다음 작품을 고민한다. 이야기가 저절로 찾아오지 않아 힘겹다. 현실속의 이야기에서 다음 작품의 모티브를 발굴하고자 무던히 고민한다. 그래서 현실의 이야기를 만지고 또 만진다."고 설명한다.


한편 편혜영 작가는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소설집 '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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