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꿈' 부른 유명가수 골목에 들어가더니…
가수 나들 '골콘'으로 골목상권 살린다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 "한 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좋아좋아', '인형의 꿈' 등으로 유명한 90년대 인기그룹 '일기예보' 출신 가수 나들(본명 박영열·45)이 골목상권 부활을 위한 전도사로 나섰다. 그는 현재 전국 곳곳의 골목 가게를 돌며 미니 콘서트를 열고 있다. 김밥집, 미용실, 호프집, 카페 등 골목길에 있는 작은 가게라면 어디든지 간다. 이름하여 '골목 상권살리기 프로젝트 - 골목콘서트(골콘)'.
◆'10평짜리' 뜨거운 콘서트장 =
골목 콘서트는 지난해 7월 첫 선을 보인 이후 1년간 23차례 공연됐다. 좁은 가게라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지만 매번 만원사례였을 정도로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콘서트를 자신의 가게나 생활공간에서 열길 원하는 신청자가 인터넷 공식 팬카페(cafe.naver.com/nadle119)에 사연을 올리면 나들이 직접 읽고 콘서트를 열지 결정한다.
신촌의 한 하숙집에서 공연한 적도 있다. 하숙생이 없어 고민하는 어머니를 위해 딸이 신청한 것이다. "현장 조사를 해보니 집에 너른 마당이 있어서 공연을 할 수 있겠더라구요. 그룹 '유리상자'의 박승화와 함께 출동해 하숙집 마당에서 공연을 했죠".
좁은 가게에 최적화된 공연을 위해 나들은 퍼커션 김성유와 함께 2인밴드 체제로 무대에 서고 있다. 그는 "골목콘서트만의 매력은 작은 공간에서 관객과 얼굴을 마주보며 나누는 교감"이라고 말한다. 관객 개개인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듯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즉석에서 생판 모르는 남녀를 무대로 불러낸 후 선남선녀를 맺어준다는 가사의 노래 '잘해봐'를 들려줄 때도 있다. 지금까지 10쌍 정도를 무대로 불렀는데 그중 8쌍이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고 얼마 전엔 한 커플이 청첩장을 들고 오기도 했다. 요즘은 남자친구가 공연 전 미리 여자 친구를 위한 프러포즈 이벤트로 노래를 신청하기도 한다.
그의 콘서트는 늘 '골목 친구 선서'로 마무리된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보다 내집 앞 골목가게를 이용하자는 다짐을 관객들이 다함께 큰소리로 제창하는 것이다.
◆"새로 얻은 삶…대중 원하는 음악 하고파" = 나들은 2009년 유전성 간 질환으로 사촌동생에게서 간 이식 수술을 받고 새 생명을 얻었다. "지금의 내 삶은 '보너스'로 얻은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제가 하고픈 음악만 했는데 이제는 좀더 대중이 원하는 음악을 하고 싶었죠".
그가 '골목상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지난 해 5월 나들은 낙성대 인근 연습실에서 기타를 메고 산보에 나섰다가 우연히 동네 삼겹살집이 장사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가게 주인 내외는 보통 오후 2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장사를 하기 때문에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는 건 꿈도 못 꾸던 이들이었다. 나들은 '이들에게 에너지를 주고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가게로 들어갔고 "잠깐 좀 쉬시면서 노래를 즐겨 달라"며 두 사람만을 위한 즉흥무대를 열었다.
"다들 너무 고마워하셨죠. 이후엔 부부가 제 팬이 됐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태블릿 피시를 들고 다니며 주문 받을 때마다 제 팬클럽에 가입하라고 손님들에게 권유하시더라구요."
이들 부부와 상의해 단골 손님을 모시고 33㎡(10평) 남짓한 가게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콘서트를 하는 삼겹살집이라는 소문이 나자 지금은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고 한다. 가게 안에는 다음 골목 콘서트가 어디서 열리는 지 적은 예고판이 붙어 있다.
◆'골목상권'을 넘어 '골목 살리기'로= 우여곡절끝에 시작한 골목콘서트지만 나들은 이 공연을 인디음악가들의 새로운 활로로 개척한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다. 나들은 "음악계도 골목상권과 비슷한 사정을 겪고 있다"며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친구들이 아니면 무대에 설 기회를 잡는 게 너무나 힘들다"고 지적했다. 내부 면적이 33㎡만 마련되면 어떤 가게라도 음악하는 이들에게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단다.
처음에는 공연 티켓을 판매했지만 점주들이 티켓 판매 부담이 크다는 의견이 있어 현재는 '후원제'로 바꿨다.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낸 후원금을 '자율 감동 후불제'라는 명목으로 받고 있다. 받은 돈은 함께 무대에 선 인디 뮤지션들에게 출연료로 지급한다.
하지만 후배들의 사기 진작과 프로젝트의 지속적인 진행을 위해선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골목천사'라는 콘서트 후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한 사람이 매달 1만원 정도를 내는 후원자 1004명을 모으는 게 목표다. 후원금 전액은 골목 콘서트 무대에 서는 인디음악가 '골목 아티스트'를 위해 쓰인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골목상권과 무대 설 기회를 잃은 음악가들에 대한 위기의식을 공유할 기업들의 관심도 요구된다.
나들은 "골목 상권보다 더 중요한 건 사실 골목 문화"라고 강조했다. 골목마다 개성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각기 골목이 가지고 있던 색깔을 찾아주고 낙후된 골목에는 숨결을 불어넣자는 게 그의 포부다.
그는 이달 중 골목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홈페이지를 열어 '골목 콘서트'와 '골목천사', '골목 페스티벌' 등에 대한 네티즌의 관심을 유도할 계획이다. 골목 콘서트가 열리는 가게를 의미하는 '골콘가게'도 하나씩 늘려가고 있다. 현재 골목콘서트를 처음 시작했던 삼겹살집이 '1호점', 군자동의 한 커피전문점이 '2호점'으로 지정됐다.
이달 26일에는 서울 논현동 삼익아트홀에서 '골목 땡큐 콘서트'를 연다. '골목천사'들과 콘서트를 유치했던 점주, 클라우드 펀딩 투자자들을 초대해 감사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골목콘서트의 열혈팬들이 결성한 '골목 원정단' 발대식도 가진다.
나들은 "골목 콘서트에 동참하는 아티스트들과 가게를 연결해주는 '허브(hub)' 역할을 맡고 싶다"며 "점주들이 '인식의 전환'을 한다면 어떤 가게에서든 공연을 할 수 있다. 클래식, 1인극 등 음악 장르나 공연 형태도 가게 분위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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