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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 500년 권력 '핏줄의 권위' 조선 왕가의 제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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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종묘

종묘제례는 조선의 국가 사당이며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다.

종묘제례는 조선의 국가 사당이며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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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봄볕이 내리쬐던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에서는 조선왕조의 가장 크고 중요한 제례, '종묘대제'가 열렸다. 종묘에서도 중심건물이자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가 모셔진 정전의 각 신실에는 각종 음식과 술상이 차려졌고, 절을 하고 술을 따르는 제의가 펼쳐졌다. 종묘제례는 조선시대 왕이 밤중에 지내는 격식 높은 제사로, 왕을 비롯해 왕세자, 제관, 문무백관이 참가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조선 왕조는 끊어졌지만 종묘제례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날 이 종묘제례를 보고자 하는 수많은 시민과 외국인들이 종묘를 가득 매웠다. 마침 전날인 4일 숭례문이 5년여간의 공사 끝에 복구 기념식을 가진 터라 이번 종묘제례는 어느 때보다 의미가 각별했다.
종묘는 조선왕조, 그리고 조선왕조의 도읍지인 서울의 대표적인 유산이다. 도읍지로서의 서울의 600년 역사를 살아 있는 현장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공간이다. 자동차들이 휙휙 내달리는 도심 속에서 나무가 울창한 녹색지대이며,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빌딩 숲 한편에 죽은 자를 모시는 공간이 있음으로써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공간이며 도시의 번잡함 속의 장엄함과 엄숙함,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곳이다.

종묘는 '종묘사직'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유교 국가인 조선의 왕실과 나라의 상징의 한 축이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궁궐과 함께 종묘와 사직단을 가장 먼저 세웠다. 이 중 종묘는 역대 왕실의 신주를 모시는 곳이다. 그러나 종묘가 조선 왕실만의 공간인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조선의 왕들은 나라의 안정과 평안을 빌었으며 종묘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왕실의 행사를 넘어서 조정과 백성들의 기원을 담은 제사이기도 했다.

종묘 정전. 왕과 왕비의 승하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 그 신주를 옮겨 와 모시는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 건축물이다. 국보 227호.

종묘 정전. 왕과 왕비의 승하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 그 신주를 옮겨 와 모시는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 건축물이다. 국보 2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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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영녕전. 1421년(세종3년) 정종의 신주를 정전에 모시며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자 다른 곳에 옮기기 위해 새로 지은 별묘다.

종묘 영녕전. 1421년(세종3년) 정종의 신주를 정전에 모시며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자 다른 곳에 옮기기 위해 새로 지은 별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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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비의 신주 모신 곳
비운의 단종, 승하 수백년 후 복위
얇은 돌 깔린 신로(神路)는 임금도 못 밟아
◆종묘 내 건축물..정전·영녕전·공민왕 신당 = 종묘에서 신주를 모시는 공간은 건물은 두 곳이다. 바로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이다. 원래 정전은 처음 세워진 1395년 태조4년 당시 신실 7칸으로 시작해 태조와 태조 이후 재위중인 왕의 4대 조상, 역대 왕 중 공덕이 큰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졌고, 나중에 신주의 수가 늘어나 정전은 동쪽으로 계속 확장됐다. 정전 앞 넓은 마당에 있는 월대에는 중앙단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정전의 정문 위치도 동쪽으로 바뀌는 등 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국보 227호인 정전은 현재 가로 101m 길이로, 국내에서 가장 긴 목조건축물이다.

정전 왼편에 자리한 영녕전에는 총 16칸의 신실이 있다. 영녕전은 1421년 세종 3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김동순 문화해설사는 "당시 정전만 있을 때는 현왕이 죽으면 고조할아버지 신주를 땅에 묻어야 했지만 효성이 지극했던 세종대왕은 당시 고조할아버지인 목조의 신주를 뺄 수가 없었고, 결국 중국 송나라 제도를 참고해 별묘로 '영녕전'을 세워 정전에서 옮겨와 모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로 정전에는 업적이 뛰어난 왕의 신주가 있다. 영녕전에는 추존왕인 태조의 4대 조상, 정전에서 옮겨 온 왕과 왕비, 그 외 추존한 왕과 왕비의 신주 등 총 16칸의 신실이 있다. 조선왕은 27대로 끝이 났는데도 신실이 총 35칸인 것은 왕으로 추존된 조선왕실 조상들의 신주도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영월에 유배돼 승하한 단종의 신주는 고종 때에 들어서야 추존왕으로 영녕전에 모셔졌다. 새로운 신주가 종묘로 들어갈 때에는 선대 왕 신실을 향해 인사를 드리는 의식이 있지만 세조 이후 신실에 모셔진 왕들은 모두 단종보다 후대 왕이었다. 김 해설사는 "고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전에서 단종 이전 왕들의 신실은 문을 열어놓았지만 후대 왕의 신실은 문을 닫았다"면서 "단종의 신주가 정전을 지나오며 '부활이요'라고 외친 후 영녕전에 모셔졌다"고 설명했다.

정전 앞에는 '공신당'이라고 해서 신하들 중 공이 큰 이들을 뽑아 위판을 모신 곳이 있다. 총 83명의 신하의 넋이 기려지고 있으며, 이 중에는 송시열, 이황, 김집 등 문묘에서 모셔진 이들도 있으나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들도 볼 수 있다. 왕의 생전에 큰 벼슬을 했거나 왕과 인연이 깊었던 이들이 여럿 선정됐던 탓이다.

종묘에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건물 하나가 있다. 고려 공민왕과 그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을 모신 '공민왕 신당'이다. 조선왕조의 종묘에 왜 고려의 왕의 신당이 만들어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문헌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지만 공민왕의 영정이 바람에 실려 종묘 경내로 떨어졌는데 조정에서 이를 신묘한 일로 여기고 그 영정을 봉안키로 해 이 신당이 건립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종묘 내 박석으로 깔린 길. 중앙길은 왕족의 조상들이 오는 길 즉 '신로'라 해서 일반인들이 밟고 가지 않는게 원칙이다. 나머지 길은 어로, 세자로다.

종묘 내 박석으로 깔린 길. 중앙길은 왕족의 조상들이 오는 길 즉 '신로'라 해서 일반인들이 밟고 가지 않는게 원칙이다. 나머지 길은 어로, 세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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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문에서부터 정전과 영녕전까지 이어진 박석이 깔린 길은 세 가지로 나눠진다. 중앙길은 '신로'로 선대 왕의 혼이 제사를 맞이하기 위해 찾아오는 길이며, 이 길은 아무도 밟을 수 없게 해뒀다. 신로 오른편 동쪽길은 '어로'로 왕의 길이며, 왼편 서쪽길은 세자로다. 종묘대제가 열리던 이날 신로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나이 지긋한 이들이 관람객들에게 '길을 비키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인 '종묘대제'는 조선 왕조에서 가장 큰 국가적 행사 중의 하나였다. 조선 시대에는 4계절과 매년 말 등 1년에 5번 제사를 지냈으나 지금은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만 봉행되고 있다. 1969년부터 종묘제례보존회에 의해 복원됐으며 제향 행사는 제사전 경복궁에서 종묘에 이르는 어가행렬, 제례악 등 연희로 나눠진다. 종묘대제 때 연주되는 '종묘제례악'은 조선의 문화유산의 정수의 하나다. 기악과 노래와 춤이 함께 펼쳐지는 종묘제례악은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는데, 이런 류의 음악이 온전히 보존된 예는 세계적으로 다른 예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종묘는 이렇듯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한데 집약된 곳이다.

종묘의궤에 수록돼 있는 신실 한 칸의 배치를 보혀주는 모형. 신주를 모신 신주장을 중심으로 서쪽에 책장, 동쪽에 보장이 있다. 신주장 앞에는 제상이 마련돼 있다.

종묘의궤에 수록돼 있는 신실 한 칸의 배치를 보혀주는 모형. 신주를 모신 신주장을 중심으로 서쪽에 책장, 동쪽에 보장이 있다. 신주장 앞에는 제상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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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신실에 비치된 신주, 제기 등 상징들 = 종묘에서 제사 예물을 보관하던 곳인 향대청(香大廳)에는 신실 한 칸의 모습을 모형으로 갖춰뒀다. 신실의 가장 위쪽 가운데에는 육면체 나무로 된 신주 위에 흰색 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신주는 조상의 몸, 천은 몸을 감싸는 옷을 의미한다. 신주 앞에는 제사상과 술상들이 차례로 이어진다.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63가지 음식들이 올라가는데 오른쪽 대나무 제기에는 마른 제수들을 올린다. 떡이나 견과류다. 반대편인 검은 옻칠을 한 그릇에는 젖은 음식, 나물들이 담겨져 있다. 가운데 단지모양의 그릇은 국그릇으로 왕이나 왕비에게 각각 바치는 국그릇 수가 6개다. 국과 밥에 이어 아래로는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가 날것으로 올라져 있으며 왼편으로는 삶은 고기를 길고 네모진 그릇에 담아뒀다. 이러한 음식 상차림 아래에는 술상이 놓여 있다. 제사를 지낼 때 직위에 따라 왕실 조상에게 올리는 술의 종류는 다르다. 왕이 올리는 술은 발효정도가 낮아 쌀알이 떠 있는 것으로 '단술'이라는 형태다. 왕세자는 막걸리, 영의정은 맑은 술인 청주를 올린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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