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티타임] '흙의 시인' 홍일선이 '닭님'을 모시고 사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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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봄 구제역 파동 시 전국에서 소, 돼지 수백만 마리가 매장됐다. 인류의 동물 수난사에서도 드문 학살 사례다. 이전에는 여러차례 조류독감(AI)이 발생, 닭들이 수난당했던 일도 있다. 다시 전염병이 돌면 이같은 '살육'은 또 벌어질 수 있다.


경기 여주군 점동면 도리 '바보숲 명상농원'. 늘그막에 '닭 아버지'로 살고 있는 '흙의 시인' 홍일선(65)의 농법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홍 시인은 귀농한 지 8년째, 토종닭 600여마리를 키우며 산다. 홍 시인은 닭을 '닭님'이라고 부르며 귀히 여긴다. 닭을 키우는 것을 양계라고 하지 않고, 닭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닭들은 한낮 동안 그저 숲에 가서 맘껏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알을 낳거나 나뭇가지에 앉아 강변을 바라보며 보낸다. 홍 시인은 닭과 함께 숲을 거닐며 명상하는 게 일과다.


"닭들은 한결같이 승려가 면벽수도를 하듯 나뭇가지에 앉아 강을 바라본다. 면강ㆍ면수를 통해 참선하는 것이다. 닭을 보면 모든 생명에 한울이 깃들었다는 동학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래서 홍 시인은 달걀을 꺼낼 때마다 "닭님, 고맙습니다" 하고 먼저 인사를 올린다. 대신 쌀겨, 깻묵 등 열세가지 곡물을 배합한 특식을 준다. 서로 주고 받는 것, 함께 명상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다.


"이곳에 와서 얼마 안 있어 강변이 파헤쳐지는, 거대한 삽질을 목격했다. 하루 열여덟 시간 강변 공사판 소음으로 잠조차 들 수 없었다. 한동안 문막이며 치악산, 장호원 등지로 도망다녔다. 닭들도 사라져 갔다. 주인이 닭을 버렸으니 오죽 하겠는가. 소음에 알조차 낳지 못하고, 족제비에 잡혀 먹고, 어떤 닭들은 그저 시름 없이 쓰러졌다. 떠날 생각마저 했다. 내가 스스로를 버리고 생명을 외면했을 즈음, 사라졌던 닭들이 숲에서 노란 병아리를 이끌고 돌아오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고 낳고 기르면서 고통을 이겨낸 닭들에게 부끄럽고 눈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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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인은 비로소 "생명의 경이로움에 머리 숙여졌고, 결코 떠날 수 없음을 알았다."," 결코 생명은 버릴 수도 없고 버려서도 안 된다. 닭이 나를 구원해줬다"고 말한다. 그처럼 유별나게 맺어진 인연, 생명과의 연대가 곧 '느린 삶'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인다. 홍 시인의 삶, 그리고 자연 농법은 '가축'을 기르는 수많은 사람들, 그 가축을 먹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홍시인은 올 봄 중군이봉 아래 농막을 두어채 지을 작정이다. 그의 농법과 삶에 감화돼 배우러오는 이들이 많아져서다. 홍시인은 이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홍시인은 기꺼이 '바보숲 느림보 강 등불학교'를 열어 함께 대화하고, 치유하고, 배우고 익힐 생각이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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