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혼란한 伊…'바다이야기'까지 등장
패션 중심국가에서 'PIIGS'로 전락…이탈리아 실상은
[밀라노(이탈리아)=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이탈리아 사람들이 로또 대신 '바다이야기' 류의 게임에 빠지고 있습니다. 경기 불황으로 사행성 게임에 기대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죠. 로또 결과가 나오는 일주일마저도 못 기다리겠다는 겁니다."
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난 15년차 교민 도준현씨는 "이탈리아의 경기침체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사회 분위기가 점차 흉흉해지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탈리아는 그리스에 이어 유로존의 주요 재정위기국으로 꼽히는 5개 국가인 'PIIGS'(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아일랜드ㆍ그리스ㆍ스페인)에 속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지난 2011년 120%에 달했고, 누적된 공공채무는 2조 유로를 넘어섰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하향조정했다. 지난 2011년 이후 6분기 연속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성장 가능성마저 의심받는 실정이다.
경기침체와 성장둔화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소상공인들의 몰락이다. 자고 일어나면 음식점이나 잡화점, 수선집 등이 문을 닫는다. 도씨는 "도시 중심가에서도 '세 놓음(affittasi)'이라는 벽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며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인들은 업종을 바꾸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에는 장사가 잘 안 되니 업종 변경도 자주 한다"고 귀띔했다.
밀라노 시내는 개점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까지도 문을 열지 않는 가게들이 부지기수다. 대부분이 폐업한 점포들이다. 전통적으로 일요일에는 가게 문을 열지 않았던 소상공인들이 최근에는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 일요일에도 점포를 여는 등 불황을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업들은 사업을 축소하거나 투자를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밀라노 시내 중심가의 패션 명소인 꼬르소 거리에 위치한 240년 전통의 가죽 브랜드 P사는 밀라노 점포 폐쇄를 결정하고 제품을 50~70% 할인 판매하고 있다.
전세계 가구업계의 트렌드를 이끄는 밀라노 가구박람회에서도 '혁신'이 사라졌다. 박람회 참가를 위해 현지를 찾은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는 "경기침체 때문에 기업들이 신제품 투자를 줄여 새로운 게 없고, 기존 제품의 재탕뿐"이라며 "일부 업체들은 아예 부스참가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주요 수입원인 관광산업도 경기침체로 흔들리고 있다. 조지 클루니, 실베스타 스텔론, 베르사체 등 유명인들이 별장을 갖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 관광지 꼬모 호수(라 리오 호수)도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 호수에는 손님을 태우지 못한 소형 보트들이 을씨년스럽게 파도에 흔들린다. 현지 가이드는 "몇년전만 해도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관광용 보트를 타기가 힘들었는데 요즘은 여유있게 예약이 된다"며 "경기침체로 이탈리아를 찾는 관광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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