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재범 기자]누적 관객 수 1억 명을 돌파한 2012년 한국영화계다. 이런 의미 있는 해에 오랜만에 순제작비만 130억 원이 투입된 엄청난 덩치의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제작비 덩치만 큰 게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도 엄청난 덩치의 빌딩이다. 무려 108층의 쌍둥이 빌딩 '타워 스카이'다. 한때 국내 최고층 빌딩이던 '63빌딩'이 초라해 보일 정도다. 오프닝 장면에서 등장한 한강변 ‘타워 스카이’와 '63빌딩'이 나란히 선 모습에 눈을 의심했다. "한강변에 저런 빌딩이 있었나?" 영화 ‘타워’의 첫 등장이다.
우선 '타워'는 영화 좀 본다는 관객들에겐 일종의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감독이 '7광구'를 만든 김지훈 감독이다. 한국영화의 첫 3D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진 영화다. 뚜껑이 열린 뒤 조악한 CG(컴퓨터그래픽)에 혹평이 쏟아졌다. 성적표는 참담했다. 때문에 '타워' 역시 비슷한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하지만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국영화로선 보기 힘든 CG 완성도가 '타워'의 최대 강점이다.
재난 블록버스터란 장르에서 기대고 보자. 볼거리의 그림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영화 속 배경인 가상의 공간 '타워 스카이'의 위용은 압도적이다 못해 실사를 의심케 한다. 첫 오프닝 장면에서 모든 게 설명 가능할 정도다.
영화 초반 파티 장면에서 등장하는 3차원 입체 영상 장면도 꽤 눈길을 끈다. 영화 속 파티의 메인이벤트 전초전인 이 장면에 등장하는 '여신 세리머니'에 감독의 CG 강박증이 느껴질 정도다. '7광구'에서의 호된 질타가 느껴졌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나.
'타워' CG의 압권은 두 곳이다. 먼저 마지막 빌딩 붕괴 장면이다. 실제 영화에선 대략 10초 정도 화면을 장식한다. 누구나 이 장면이 CG임을 알고 보게 되지만 도심을 뒤덮는 거대한 분진 장면에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된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를 보면 이무기가 빌딩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개봉 당시 심 감독은 그 한 장면에서 몇 개월의 공을 들였다고 한다. 단언컨대 이 장면에 '타워'의 마지막 장면을 비교한다 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두 빌딩 사이를 잇는 구름다리 붕괴 장면도 볼거리 면에서 만점에 가깝다. 유리로 된 다리의 갈라짐과 세밀한 붕괴의 연속을 정밀한 CG의 완성도로 클로즈업부터 풀 샷까지 단계별로 화면에 구현해 냈다.
불의 완성도에서도 감점을 주기 힘들다. 이미 할리우드 영화 '분노의 역류'나 한국영화 '리베라 메' 등에서 불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나온 바 있다. '타워' 역시 이에 뒤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발화점인 헬리콥터 충돌 화재 장면은 재난 영화의 핵심포인트인 아비규환의 모습을 충분히 표현해 냈다. 여기에 배우들의 실제 연기가 더해져 사실감을 높인다. 화재 장면의 경우 일부만 CG가 대신 했을 뿐 실제 불을 질러 촬영했다고 하니 더 이상의 화재 장면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타워' 자체가 결코 빈틈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볼거리와 주제 의식의 배분이 잘못된 조합으로 이뤄졌다. '타워 스카이'란 공간을 빗대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등장시켰고, 이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며 대처하는지를 보여줘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겠다는 점을 드러냈다. 경찰 서장과 국회의원 부부의 모습, 그리고 청소부 아줌마의 등장은 이런 의도일 수 있겠다. 여기에 차인표가 맡은 빌딩 회장 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녹아들지 못하고 날아가 버리듯 사라진다. 휘발성 강한 캐릭터의 배치가 마치 '타워' 전체의 불을 확장 시킨 것 같다.
결국 '타워'는 볼거리에만 치중한 허술한 구조의 재난 드라마가 됐다. 볼거리에 치중한 기획성 블록버스터 입장에서 취할 것과 포기할 것을 나눠놓고 선택하자면 꽤 영리한 결과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안했다면 어땠을까. 결코 방법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워',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회생으로 불리기에 2% 모자란 범작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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