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35)씨도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지난 1993년 발로치스탄 접경 카라치로 가족과 함께 강제 이주된 경우다. 2년 뒤인 95년부터 독립운동단체 BNM(Balochistan National Movement)의 시니어 멤버로 활동한 K씨는 2007년 비밀경찰에 총상을 입고 정부의 눈을 피해 이듬해 가명이 적힌 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K씨는 지난해 가짜여권이 적발돼 뒤늦게 난민 인정 신청을 냈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이를 불허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난민신청인이 한)진술의 핵심내용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일관성 및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K씨에게는)'민족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볼만한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인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K씨가)파키스탄에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소멸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K씨가 이름을 속인 여권으로 국내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도 "독립운동에 가담한 세력에 대하여 살인, 고문 등의 박해를 가하여 왔으므로 안전하게 출국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난민인정의 부정적 요소로 삼을 수는 없다"고 봤다.
K씨의 사연을 전해듣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배의철 변호사(연수원41기·공익법률기금 상임집행위원장)다. K씨 등 국내에 들어와 지내는 발로치족은 스무 명 남짓. K씨 진술 외에 파키스탄 국내 상황을 설명해줄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배 변호사는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를 수소문한 끝에 2명의 발로치인을 찾아 서면진술을 받았다. 이들은 파키스탄 정보부(ISI) 등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해 결국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 변호사는 "최근에야 인권상황이 국제사회에 알려진 발로치스탄의 경우 K씨의 구체적 진술 외 특별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진술의 일관성·신뢰성 원칙에 기초해 박해의 공포를 인정한 법원 판결은 국제법적 인권 수호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환영했다.
법원도 K씨가 당한 박해를 공정하게 저울질하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법원 관계자는 "재판 특성상 통역인을 통할 수 밖에 없기 마련인데 친 파키스탄 정부 성향의 통역인이 나설 경우 상황이 곡해될 우려도 있어 통역인 선정 과정부터 주의를 기울였다"며 "앞으로 수 건의 발로치스탄 난민 재판이 더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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