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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단상] 생명보험, 기본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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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강의를 듣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경제 대가의 세계경제위기 진단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누군가 번다는 것은 누군가 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한마디가 전기처럼 찌르르하고 심장을 찌른 것입니다. 그렇군요 나는 벌기에만 골몰했지, 내가 써야 남이 번다는 기본정신에는 소홀했습니다.

생명보험에도 기본정신이 있습니다. 금융권으로 분류되어 있기는 하지만, 본래 생명보험의 기본 정신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경제적 부담을 던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비슷한 여건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모아 두었다가 힘든 일을 당한 동료를 도와주는, 상부상조의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보험사가 종합금융을 지향하면서 이 같은 원칙과 기본이 조금씩 변형되는 모습입니다. 보험사들은 수익형, 펀드형 등 다른 금융권의 특징과 융합한 보험상품을 앞다투어 내놓았습니다. 보험사도 지속 가능한 회사다보니 수익을 고려치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과 은행, 증권 회사 간의 무리한 수익률 비교로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는 빌미가 된 듯합니다.

더욱이 근래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되는 보험사고 관련 기사를 접하면서, 그 다양한 방법뿐 아니라 행위에 가담한 인적 구성에도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보험금을 노린 사망사건 외에도, 보험금 갈취를 위해 어린 자녀가 동원되고 대학생과 직장인, 일부 의사까지도 적극적으로 보험사기에 관여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보험금 수취목적으로 보이는 자살이 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생명보험 본래의 기능이 이렇게 훼손된 책임의 일단이 보험회사 경영자인 저에게도 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알려졌듯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1위이고 교통사고 사망률보다도 월등히 높습니다. 물론 자살이 모두 보험과 연관되어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통계를 보면 생명보험사의 자살 무보증기간(보험가입 후 일정기간 이내 자살할 경우에는 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음. 우리나라의 경우 2년)이 끝난 시점부터 1∼2년 사이에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어 보험금과 자살행위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우리 금융감독기관에서는 자살 무보증기간을 1년 정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자살의 경우에는 아예 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DB생명 관련부서의 검토에 따르면 사망보험의 보험료 구성요소에 자살을 제외하면 거의 10% 이상 보험료가 저렴해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다수 건전한 고객의 경우, 자살을 사망 담보에서 제외하면 그만큼 보험료가 저렴해지고 최악의 경우에도 자살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고려하지 않게 되어 간접적인 자살방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편이 생명보험의 기본정신에 더욱 부합될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최선을 다해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자살을 결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생명보험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경쟁이 심하고 경제가 어렵다보니, 물불 가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다보니 기본을 놓치는 일이 자주 눈에 뜨입니다. 크루그먼 교수의 강의에서 생명보험업의 기본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계기를 가지게 된 것이 제게는 큰 수확입니다.

조재홍 KDB생명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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