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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길 위에 앉아서 '밥' 먹는 소방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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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경훈 기자]"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소방관의 기도(Firemen's Prayer)'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지난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화재 사고 당시 순직한 한 소방관의 책상에 걸려 있다가 언론에 보도돼 큰 감동을 줬던 이 시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한 장면에서 나레이션으로 소개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다시 보고 또 듣고 싶지만 현실과 맞닿아서는 회자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 시가 추석을 이틀 앞둔 지난달 28일 경기도 남양주 물류창고 화재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한 소방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다시한번 네티즌들을 울렸습니다.

화재발생 신고를 받자마자 현장에 투입된 고(故) 김성은 소방관. 그는 밤새도록 이어진 진화작업 끝에 불길을 잡았지만 혹시 구조가 필요한 사람을 못봤을지 모른다며 다시 매캐한 연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뒤 현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김 소방관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죽음이 슬픔과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지만 소방관들의 죽음에 유독 많은 사람이 특별한 감회를 갖는 것은 자신을 희생해서 남의 생명을 구해야만하는 운명적인 직업적 특성때문일 것입니다. 남들은 불길을 피해 뛰쳐나오는데 오히려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하는 소방관들의 헌신성은 언제나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도 남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진정한 '영웅'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웅'들이 처한 현실은 우리를 놀라게합니다.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소방방재청이 제출한 '16개 시도별 취사차 및 폐쇄텐트 보유현황' 자료를 검토한 결과 4만명 소방관의 식사와 휴식을 책임질 취사차와 폐쇄텐트는 각각 5대와 127동에 불과해 소방관들은 제대로 된 식사와 휴식은 꿈도 꾸기 어렵다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지난해 우면산 산사태 사건 발생 당시 길 위에 앉아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고 쉬고있는 소방관들의 사진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소방관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도했습니다.

인력부족과 장비 문제도 심각합니다. '살인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하루 24시간 맞교대에다 여전히 노후화 된 장비를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하는 게 소방관들의 현실입니다.

또다시 찬바람이 불면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자주 들려오는 계절이 돌아왔고 소방관들은 여전히 길에서 밥을 먹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결혼도 마다하고 불길과 싸워왔던 마흔 다섯살 아들, 홀어머니에게 끔찍한 효자였던 김성은 소방관의 명복을 빕니다.




김경훈 기자 sty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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