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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강지원의 도전, 김영란의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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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침, 신문을 읽다가 잠시 한 기사에 눈길이 멈췄다. 이명박 대통령이 며칠 전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계속 위원장직을 맡아줬으면 하니 잘 설득해달라'며 김 위원장의 사표를 반려했다는, 짤막한 내용이다.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은 의아스러울 것이다. 김 위원장의 사표를 반려했다니, 그가 언제, 왜 사표를 냈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 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지난 3일이다.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하루 전이다. 남편이 대선에 나서는데 부인인 자신이 공직을 계속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소신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 3월 해외출장 중에 부친상을 당하고도 주변에는 알리지 않은 채 일정을 다 마치고 귀국했던 곧은 성격에 비춰 능히 그럴 만하다.
김 위원장은 "남편의 출마 결심이 확고한 만큼 나도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위원장직을 유지하는 건 모양새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평소 소신에 더해 자신이 주도적으로 제정하려는 이른 바 '김영란법'인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가 대선 후보의 부인인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지 싶다.

남 말하기 좋아는 이들은 이를 두고 '돈키호테 같은 남편 때문에 일 잘하는 김 위원장까지 잃게 생겼다'고들 수군댔다고 한다. 강 변호사의 출마를 '무모한 도전'으로 간주한 비아냥거림이다. 다들 '왜 흙탕물에 들어가려 하느냐'고 말리고 부인도 극구 반대했다고 하던데, 더구나 만의 하나라도 당선될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데, 무엇이 그를 대선판으로 이끌었을까.

강 후보의 생각은 간단했고, 또 확고했다. "한국 최초의 매니페스토(정책중심선거) 후보로서 정치개혁을 위한 운동차원에서 나섰다"는 게 출마의 변이다. '한국 정치판의 오염된 흙탕물을 제거하고 죽겠다'며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의 이력에 비춰 꼭 허황하게만 들리진 않는다. 검사 시절 청소년 선도에 앞장서 '청소년 지킴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라는 직함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이 시작된 것은 2006년 5ㆍ31 지방선거 때다. 강 후보는 그때부터 줄곧 정책중심선거 운동을 주도하며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흑색비방 선거, 돈봉투 선거, 지역감정 선거가 여전했다. 보다 못해 "매니페스토 후보로서 정책중심선거의 모범을 보이겠다"며 흙탕물에 뛰어든 것이다. 출마선언도 매니페스토 정신에 입각해 보도자료 한 장으로 대신했다.

정리해보자. 김 위원장은 여전히 사퇴 의사를 굽히지 않고 조만간 다시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꼭 그래야 하는가 싶다. 권익위는 부패 방지와 국민의 민원을 해결하는 기관이다. 선거에 영향을 끼칠 일이 별로 없다. 남편이 대선에 나섰다고 해서 굳이 그만 둘 이유가 없다. 시비를 걸거나 비난할 이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리를 지키며 비리 척결을 위한 '김영란법' 제정을 마무리하는 게 공직 생활을 오래 해온 김 위원장이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는 길일 것이다.

아울러 강 후보는 '무모하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기 바란다. 스스로 '모범답안대로 정직하게, 바르게 치른 경험만으로도 계속 매니페스토 운동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이야깃거리와 명분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국민이 강 후보의 출마를 계기로 어떤 투표를 할 것인지 연습하고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의 말대로, 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 건 분명 '기적'이다. 기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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