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할머니는 오전7시부터 오후7시까지 강남역에서 '알바'를 하는 고령자 알바생이다.

▲ 김 할머니는 오전7시부터 오후7시까지 강남역에서 '알바'를 하는 고령자 알바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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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폭염이 쏟아지는 강남역 사거리.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이곳에 매장 입구를 가리키는 커다란 화살표 모양 팻말을 든 노인이 서 있다. 창이 넓은 모자를 쓴 노인은 이 팻말 기둥을 잡고 몇 시간째 서 있다. 노인은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고 종종 간이 의자에 앉아 생수병을 들이켰다. 그는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도 같은 일을 했다. 그렇게 김순덕(가명·69세)씨는 5년을 강남역 출구 앞에서 일했다.


"옛날엔 11번 출구엔 10명씩 아줌마들 서 있었어. 11번이랑 10번, 3번 출구가 원래 많았거든. 그런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망한 데가 많나봐. 3명 정도거나 없잖아. 일감이 줄었어".

김씨는 '투잡'을 한다. 오전엔 전단지를 돌리고 오후엔 '팻말알바'를 한다. '팻말알바'는 학원, 일식집, 당구장을 홍보하는 팻말기둥 옆에 서서 사람들을 호객하는 아르바이트이다. 김씨는 "하나둘씩 팻말을 세우기 시작하니까 다른 곳도 다 따라하더라고. 팻말알바 생기면서 전단지 일감은 많이 줄었어"라고 말했다.


김씨의 7시에 출근해 7시에 퇴근한다. 12시간을 '강남역 길거리'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버는 일당은 3만원에서 5만원 사이. 일요일 하루만 쉬고 바짝 해도 월수입이 10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마저 일정치 않은 편이다. 비가 오는 날은 무조건 일이 없고 전단지 알바의 경우 점포 개업일이나 학원 개강일에 맞춰 열흘 사이에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급여 기준도 업체마다 다르다. 한 달이나 뒤에서야 주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생계'에 쓰인다. 김씨는 "남는거? 없지 뭐. 여기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해. 소일거리가 아니야. 생활하려고 나오는 거야"라고 밝혔다.

가장 힘든 건 날씨다. 한여름 폭염도 엄동설한 칼바람도 피해갈 길이 없다. 김씨는 "더울 땐 엄청 덥고 추울 땐 엄청 춥잖아"라며 "잠깐잠깐 있는 것도 아니고 몇 시까지 있어달라고 하면 그 시간 내내 있어야 하니까 힘들어"라고 말했다. 그는 "못된 것들이 고의적으로 밀어서 다친 할머니도 몇 봤어"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전단지를 돌리다 과로로 사망한 동료도 있었다. 김씨는 "9남매 키우던 사람으로 알고 있어. 돈이 아주 없던 양반도 아니라던데…. 60대였어. 딸래미가 밥 사주러 오던 날이었다고 하던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 강남역 일대에는 김씨처럼 '펫말 알바'를 하는 고령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 강남역 일대에는 김씨처럼 '펫말 알바'를 하는 고령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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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기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에 등록된 50세 이상의 이력서는 총 4849건. 고령층이 인터넷 사용에 서툴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증가세도 두드러진다. 2007년 2~3월 한달에는 평균 121건 등록에 그치던 50대 이상 고령 구직자의 이력서수가 지난해 한달 평균 653건이 올라왔다. 4년전보다 5배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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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몬 관계자는 "최근 5년새 고령자 알바생들이 부쩍 늘었다"며 "이런 분들은 드물게 은퇴 소일거리용으로 알바를 하지만, 60%가 생계형이다"고 밝혔다. 또 "고령자 알바는 젊은층 알바보다 안정적이고 책임감도 높아 고용주들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하면서도 "이들은 젊은이들에 비해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미지급과 같은 불이익에 소극적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실버 구직자를 위한 많은 일자리 마련과 함께 열악한 근로환경에 처하기 쉬운 고령 구직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구채은 기자 fak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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