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여 전인 1988년 9월 17일, 서울의 하늘은 맑고 높고 푸르렀다. 세계적인 명품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우려했던 대기 오염은 기우였다. 제24회 하계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그날 글쓴이는 코엑스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에 있었다. AP통신, 신화통신을 비롯한 외국 언론사와 모든 국내 언론사 기자들이 한두 명 근무자를 빼고 모두 지척인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 가 있었다.
메인프레스센터에 있는 기자들이 할 일은 개막식이 시작되면 곧바로 보도 통제가 풀릴 성화 관련 기사를 작성해 각자 회사에 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일을 할 기자들은 전날 열린 리허설에 미리 다녀왔다. 자원봉사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도 자료에는 성화 최종 주자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육상 3관왕 임춘애로 돼 있었다. 그리고 성화 점화자는 3명이었다. 기자들은 이들의 프로필을 보고 빛의 속도로 기사를 써 내려갔다.
28일 새벽 지켜본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프로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탄 배에 놓인 성화가 템즈강을 따라 주경기장에 오는 과정부터 그랬다. 서울 올림픽 때는 성화가 아니고 식전 행사에 필요한 대형 용고가 한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모든 이가 성화 최종 주자로 내다본 영국의 전설적인 조정 선수 스티브 레드그레이브(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2000년 시드니 대회 5연속 금메달)는 주경기장 앞에서 16~19세의 영국 스포츠 유망주들에게 성화를 넘겼고 이들이 하늘로 솟아오르게 설계된 성화에 불을 붙였다. 시대를 이어 간다는 뜻이 담긴 24년 전의 서울 올림픽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개막식의 대미를 장식한 비틀즈 멤버 폴 매카트니가 부르는 ‘헤이 주드’를 들으며 24년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 울려 퍼졌던 ‘손에 손잡고’ 멜로디가 떠올랐다. 이 노래를 부른 코리아나는 비틀즈만큼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서울 올림픽 개막식의 마지막을 흥겹게 장식했다.
모든 관중과 각국 선수들이 나이에 크게 관계없이 ‘헤이 주드’를 따라 부르는 장면을 보면 서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매카트니와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로 이뤄진 비틀즈가 50여년 만에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해 봤다. 코리아나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2012년, 서울에서 올림픽을 했다면 어땠을까. 다른 분야는 몰라도 IT 기술과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상은 역대 최고였을 게 틀림없다.
24년 전 그날 식전 행사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프로그램은 ‘태초의 빛’이었다. 이제 중년의 아주머니가 된 최경은은 그때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2학년이었다. 최경은은 자신이 출연하는 ‘태초의 빛’ 순서를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잘하자, 잘하자.’ 그의 앞뒤에 있는 출연자들은 아예 소리 내 다짐하고 있었다. “잘해야 해, 잘해야 해.” 이화여대 무용과 학생 전원과 서울 시내 여러 고교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여학생들 그리고 세종대 무용과 남학생 등 1300여 명의 출연자들은 저마다 기도하고 있었다. 잠시 뒤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는 이들이 그리는 ‘WELCOME’ ‘어서 오세요’ 글씨가 아로새겨졌고 프로그램 마지막에는 선명한 빛깔의 서울 올림픽 엠블럼이 펼쳐졌다. 여름 방학 내내 효창운동장과 동대문운동장에서 땀 흘려 준비한 출연자들은 공연이 끝나고 서로를 격려했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출연자들도 있었다. 서울 올림픽은 이들과 같은 출연자와 2만7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의해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금메달 12개, 종합 순위 4위보다 훨씬 값진 성과였다.
성화대에 앉아 있던 비둘기가 타 죽었기 때문에 서울 올림픽이 역대 최악의 개막식이었다는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의 기사를 보고 떠오른 단상이다. 200년을 겨우 넘긴 역사를 펼쳐 보이려다 보니 서부 개척 시대 포장마차가 LA 메모리얼 콜로세움 그라운드를 누빈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개막식은 볼 만한 개막식이었을까.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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