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일본 엔화가 연일 강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 부채 위기 등으로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안전한 일본 자산을 선호하는 게 근본 원인이지만 일본 정부가 연금생활자들을 의식해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도 엔고의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해외판인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26일 '일본주식회사'라고 불리며 세계 시장을 주름잡은 일본 기업들은 후쿠시마 원전 유출사고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기업가 정신 부재,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 등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일본 기업들이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손꼽는 것은 엔고다. 엔고 탓에 일본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들이 가격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24일 기준으로 유로엔 환율은 94.12엔으로 11년래 최고치이며, 달러엔 환율로 78.18엔에 이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화 강세가 이처럼 심각한 것은 일본 정부가 연금생활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사실상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엔고 덕에 연금 생활자들은 해외 수입 제품들이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정부가 엔고에 적극 대처할 경우 연금 생활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이는 정치권에 대한 반란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일본 집권당과 일본 정부는 일본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연금 생활자들을 의식해 엔고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와세다 대학의 하라다 유타가 정치경제학 교수는 "정부가 엔고와 디플레이션에 대해 적극 대응하지 않는 데는 세대간의 갈등문제가 있다"면서 "현재 노령층이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경제학자들은 ‘노령층의 승리’로 커다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엔고로 인해 일본 기업들은 해외 이전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20년째 줄곧 일본 경제를 괴롭혀왔던 디플레이션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본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산업 기반이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던 일본 경제는 엔고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일본은 1980년 이후 31년만에 처음으로 무역수지를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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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일본의 왜곡된 연금시스템과 디플레이션 용인 정책은 젊은 세대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다고 꼬집는다. 일본 기업들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국내 확장보다는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으며, 기업가 정신을 가진 젊은이들이 창업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는데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표를 보유한 연금생활자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게 큰 부담이 돼서다. 일본정부의 연금 생활자 눈치 보기가 엔고의 불편한 진실인 셈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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