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두고 있는 세무 공무원 정인성(56)씨는 해답을 아내에게서 찾았다. 정씨의 아내는 간혹 주말에 무의탁 노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다닌다. 지난해부터 몇 차례 아내와 어울려 봉사활동을 나가기 시작한 정씨는 "아내는 물론 여러 사람과 어울려 봉사하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걸 느꼈다"며 "은퇴 후 많은 시간을 봉사하면서 보내자고 아내와 약속했다"고 말했다. 퇴직을 앞두고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준비 중인 정씨는 "왜 진작 다른 사람을 위해 좀더 노력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무척 흡족하다.
50세를 전후로 은퇴하고 100세까지 사는 시대다. 준비가 없으면 별다른 소득도 없는 채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더 살아가야 한다. 경제적 여유만 갖췄다고 인생 2막이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다. 건강과 인간관계까지 따져들면 골치 아픈 은퇴 후 50년, 행복한 노후를 위해 많은 이들은 여유와 나눔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베이비부머의 가족생활과 노후생활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93%가 "노후엔 부부끼리, 혹은 혼자 살고 싶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이들이 가장 중요히 여기는 인간관계도 배우자(응답자 78.4%)로 꼽으며 자녀로부터 자신의 노후보장을 기대하지 않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누인 자녀들도 인생 2막에선 동반자가 아니다. 은퇴세대는 "자녀와 함께 살고 싶다"는 비중이 6.1%에 불과할 만큼 자신들만의 '여유로운' 여생을 꿈꾸는 셈이다.
박씨는 영어교실 외에 목공일에도 흠뻑 빠져있다. 일을 놓을 때쯤 광주 오포면에 자리한 목공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가구나 야외식탁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영어교실에선 제자인 노인들도 목공일을 할때면 동료다. 콘솔, 식탁, 책장은 물론 야외 의자 등 가구 대부분 그가 만든 것이다. 간혹 친구들에게 간단한 흔들의자 같은 것도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떤 때는 친구들이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자재비만 받고 만들어준다. 박씨는 "늙어서 가진 재능 일부를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 노년을 잘 보내는 방법일 수 있다"며 그것이 기부의 일종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자신을 위한 시간투자, 재능기부를 동시에 누리는 지금의 일상이 박씨는 행복하다.
권오용 SK그룹 고문도 나눔과 봉사로 인생을 새롭게 설계한 경우다. 권 고문은 1980년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입사해 금호그룹 등을 거쳐 SK그룹 홍보담당 임원을 지낸 '홍보의 달인'이다. 권 고문은 최근 32년간의 직작생활을 마치며 "이제 남은 여생을 봉사하며 살겠다"고 아예 선언했다.
'퇴직 후 인생경영'의 저자 이회승 박사는 "만족할만한 은퇴생활을 위해서는 인생관과 여가생활에 대한 계획을 재정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여유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인생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재능 기부, 나눔, 봉사활동 등은 행복한 노후설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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