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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최저임금 받고 과연 먹고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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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푸어의 삶에 뛰어든 저널리스트, '노동의 배신'으로 실태 고발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지난 2009년 한 시사주간지 사회팀 기자들이 잠시 펜을 내려놨다. 그들은 기사를 쓰는 대신 노동현장에 위장취업을 감행했다. 최저임금인 시급 4000원을 받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다.

네 명의 기자가 각각 한 달 씩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서울의 한 대형마트, 경기도 마석 가구공장, 안산 난로공장에서 뼈 빠지게 일했다.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면서 겪은 일들은 생생했다. 이들은 취재기를 묶어 '4천원 인생'이라는 책을 내놨고, 이 책은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불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가 최초는 아니다. 10년 전, 미국의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비슷한 도전에 나섰다. '최저 임금을 받아서 과연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들이 가난 한 게 정말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일까?'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저자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일하며 '워킹 푸어(Working poor:근로빈곤층)의 삶에 뛰어들었다.

◆워킹푸어로 살아남기
= 저자가 처음 맞닥뜨린 일은 식당 웨이트리스였다.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에 지쳐 서비스 정신 따위는 어느새 사라졌다. 웨이트리스 일에 필요한 것은 '생각하지 말고 계속 움직이는 것'. 그녀는 손님을 응대하는 일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쓸고, 닦고, 썰고, 붓고, 채우는 '잡일'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지배인은 한시도 쉬지 못하게 감시했고, 문제가 생기면 식당 한쪽에 세워놓고 야단치기 일쑤였다.

두번째로 체험한 청소용역회사의 파견 청소부는 강도 높은 육체노동의 반복이었다. 집안 곳곳의 먼지를 털고 거대한 진공청소기를 등에 진 채 돌아다녔다. 무릎 꿇고 바닥을 닦고 똥 묻은 변기까지 청소해야 했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청소부들을 늘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했다. 저자는 유니폼 자체가 '죄수복'과도 같았다고 회상한다. 더 서글픈 사실은 청소부는 워킹푸어의 세계에서도 최하층에 자리한다는 점이다. 다른 저임금 노동자들에게조차 따돌림을 당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월마트 매장에 취직했다. 숙녀복 매장에 배치돼 손님들이 어질러 놓고 간 옷을 정리하고 제자리에 갖다놓는 단순노동을 했다. 쉬운 일처럼 보였지만 일은 해도 해도 끝나지 않았다. 근무 초반에 친절한 '지킬 박사'였다가도 끊임없이 옷가지를 헤집어놓는 손님들에 지쳐 이내 '하이드'로 폭발하고 말았다.
 
◆가난해서 돈이 더 드는 현실
= 저자가 저임금 체험을 시작하면서 세운 목표는 단순했다. 일을 구하고 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음식을 사고 잠자리를 구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 하지만 쉬지 않고 일해도 최저임금만을 받고서는 먹고살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절약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빨리 깨졌다. 오히려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드는 상황이 수시로 부딪혔다. 사는 곳을 구할 때도 한 달 치 집세와 보증금이 없으면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부엌이 없는 집에서 산다면 패스트푸드를 먹거나 편의점에서 즉석식품을 사먹어야 한다. 영양은커녕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조차 섭취하기 힘들다. 의료보험에 가입할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필요한 약도 살 수 없다. 결국 약을 구하지 못해 일을 오래 쉬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노동의 배신' 이후 10년, 현실을 얼마나 바뀌었나
=2001년 이 책의 초판이 나오자마자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됐고, 지난 10년간 미국에서만 15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생활임금운동의 큰 동력이 됐다. 그 결과 29개 주가 최저임금을 인상했고,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생활 임금을 지급하라는 법령이 통과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사정은 더 나빠졌다. 특히 2008년 시작된 경기 하락 이후 급격히 악화됐다. 저자는 10년 전의 상황에 대해 "계속 경제는 성장하고 있었고, 비록 보수는 적을지라도 원하기만 하면 일자리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10년 만에 대다수의 일자리가 씨가 말라버렸고 남아 있는 일자리를 두고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사람들은 블루칼라 노동자 계급이라고 지적한다. 2008년~2009년에 블루칼라 계층의 실직률은 화이트칼라보다 3배나 빠르게 늘어났다. 그들의 삶이 더 어려워진 이유는 간단하다. 가진 자산이나 저축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일자리마저 잃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빈곤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10년 전 저자는 '더 높은 최저 임금, 보편적인 의료혜택, 적당한 집세, 좋은 학교' 등을 답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더 간소하고 절박해졌다. '임금을 너무 적게 주지 말자.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처럼 다루지 말자. 원한다면 더 나은 임금과 노동환경을 얻기 위해 조직을 결성할 권리를 주자.' 그 중에서도 '적어도 우리는 사람들이 넘어졌을 때 그들을 발로 차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는 저자의 맺음말이 무겁게 와 닿는다.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부키/1만4800원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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