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 지역 수주 분야가 다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MENA 국가들이 석유자원 이후 시대(Post-oil Era)를 대비해 신재생에너지 등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가 프로젝트 등장이 이젠 흔한 뉴스가 됐을 정도로 규모도 매년 확대 중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해외 플랜트 수주 실적 중 5억달러 이상이 80%에 육박한다. 그만큼 MENA 지역의 플랜트 생태계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척박해진 플랜트 생태계에서 단비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게 정책금융이다. 해외 플랜트 발주처들이 입찰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금융 조달까지 요구하는 '선금융 후발주' 방식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즉, 금융조달 능력이 프로젝트 수주의 성패를 결정 짓는 관건이다. 우리 금융회사들이 역량을 확충하고는 있지만 해외 프로젝트를 지원한 경험이 부족하다.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최근 카타르에서 진행된 바르잔(Barzan) 가스처리 프로젝트의 경우 여러 공적수출신용기관(ECA)으로부터 조달한 금융액이 26억달러로 전체 프로젝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정책금융기관들의 금융이 플랜트 사업의 성사를 좌지우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가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민간 금융회사의 역량이 확충돼야 한다. 개별 정책금융기관이 지원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 지 오래다. 민간 금융회사가 긴 호흡을 갖고 정책금융기관과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해 경험을 쌓고 해외 발주처와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얼마 전 중동 지역에서 코미디언과 방송인으로 맹활약하는 한국인에 대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유창한 아랍어ㆍ영어는 물론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지에 한국을 알리는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로도 위촉돼 활약 중이다. 이처럼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뚫고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현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도 MENA의 문을 열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래된 친구 MENA가 다시금 손을 내밀고 있다. 우선 신뢰의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정책금융은 정책금융대로, 민간금융은 민간금융대로 새로운 탑을 쌓아야 한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