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날인 어제 법률소비자연맹이 발표한 '고등학생 법의식 조사 결과'는 우리 법치주의의 현실과 관련해 충격적이다. 전국 고교생 3000여명을 표본으로 대면조사를 해 보니 94%가 '권력이나 재력이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법보다 권력이나 돈의 위력이 더 크다'는 응답은 87%, '우리나라 법률은 불공정하다'는 70%에 이르렀다. 가장 법을 안 지키는 집단으로는 79%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을 꼽았다.
사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정치 권력자의 입맛에 맞춘 판결을 서슴지 않고 내리던 법원이 민주화 이후에는 재벌을 비롯한 돈의 권력에 약한 모습을 보여 왔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7명이 1999년 이후 총 2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뿐 아니라 평균 9개월 만에 다 사면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약자의 항변을 넘어 법률 이론으로 승격할 판이다.
이래서는 시장경제라는 게임의 룰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심판이 공정하지 않은 경기에서 어느 선수가 반칙을 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려고 하겠는가. 법률소비자연맹은 이번 조사 결과와 관련해 '가정과 사회에서 제대로 된 법과 공동체 윤리 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했지만, 뜬금없는 말이다. 이건 청소년 교육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정의 재정립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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