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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아의 몽테크리스토백작 "재산이 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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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몽테크리스토 백작, 비드지나 이바니쉬빌리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그루지야 중부에 초르빌라시 주민들은 이 나라의 다른 지역 주민들과 전혀 다른 삶의 질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병들었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 고아나 다자녀 가구는 매달 보조금을 받는다. 또 이 지역내 1만7000명의 주민들은 무료로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공짜 TV와 공짜 VCR, 공짜 가스 스토브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 지역에 있는 40여개의 학교는 전부 다시 지어졌고, 병원 또한 새롭게 수선됐다. 이 모든 것은 비드지나 이바니쉬빌리(56)라는 한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이뤄진 일 들이다. 그리고 이 도시의 중심부에는 이바니쉬빌리의 대저택이 있다. 그를 만났던 미국의 격주간지 포브스의 기자는 마치 중세시대의 봉건영주의 집을 찾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만 주민들을 수탈하는 영주가 아니라 전체 주민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그런 영주 말이다.

이바니쉬빌리의 흔적은 그의 고향 초르빌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루지아의 수도인 트리빌시에 있는 국립대학교와 트리빌시에서 사장 큰 극장 모두 그의 돈으로 개보수 됐으며, 그루지아 곳곳의 국립공원, 스키리조트, 병원 등에도 그의 손길이 닿은 손은 허다하다. 그루지아라는 한 나라가 이바니쉬빌리 한 개인으로부터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그림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든다. 이바니쉬빌리 그는 대체 누구일까?

1956년 2월 초르빌라에서 태어난 이바니쉬빌리는 소년시절 제철소에서 자투리 철을 쓸어담는 일을 하며 그 돈으로 밤에 학교를 다닐 정도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어 모스크바로 떠난 그는 러시아어와 함께 노동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시대의 변화를 간파하고 사업 기회를 얻게 된다.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표방하며 소련 사회에서 상업에 대한 규제를 풀자, 그는 컴퓨터와 버튼식 전화기 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0년에 소련 사회에서는 엄청난 금액인 10만달러의 돈을 모은 그는 로시스키 크레딧(Rossiisskii Kredit, RK)라는 은행을 설립했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 개설된 은행 중에 하나였던 RK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 설립 6년만에 은행 자산은 70배로 늘어났다. RK는 러시아 정부기관 및 국영기관들과 거래를 트면서, 이바니쉬빌리는 러시아의 고위 인사들과 친분관계를 만드는데 성공했따.

당시 러시아는 주요 산업시설 및 광산들의 민영화에 나섰는데, 이바니쉬빌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 고위인사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귀금속 사업분야들을 쓸어담았다. 당시 그가 얼마나 헐값에 회사들을 사들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91년 이바니시빌리는 15만달러를 들여 토이린스티(Stoilinsky) 광업을 인수했는데, 15년 뒤에 이 회사는 5억달러에 팔았다. 300배가 넘는 돈을 남긴 것이다. 물론 광업을 통해 벌어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이 외에도 이바니시빌리는 알루미늄 및 금 사업에도 진출했다. 이바니시빌리는 자신의 재산 형성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 시기 그에 대해서는 불법과 합법 사이의 경계선상에 서 있을 것이라고 미국의 격월간지 포브스는 설명했다.

이바니쉬빌리는 재산을 지키는 데 있어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1998년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자신의 은행인 RK마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바니시빌리 개인의 재산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다. 개인 재산을 대부분 금 등으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야 그가 금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가 알려졌는데, 그의 금 보유량은 무려 31t이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금 보유량을 대거 늘려 55.4t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엄청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포브스는 세계의 억만장자 중에 한 사람으로 그를 꼽았는데, 이에 따르면 그의 재산 64억달러(7조2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2002년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로 이민을 떠났다. 당시 이바니시빌리는 예술 작품 수집에 몰두 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포브스는 그가 이 시기동안 사들인 예술작품의 가격이 최소한 10억달러는 넘어섰을 것으로 전망했다.

2003년 이바니쉬빌리는 자신의 고향에서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장미혁명으로 불리우는 민주화 운동으로 에두아르드 세바르드나제 대통령이 물러나고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대통령이 됐다는 소식이다. 신정부에 대한 기대를 품은 그는 고향에 선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새로 들어선 정부에게 경찰차를 사고, 슬리퍼에 청바지 차림이었던 군대에 군복을 사라면서 1억달러를 건냈다. 그는 심지어 신정부의 장관들이 부정을 저지를까 우려된다며 이들 월급을 올려주라고 돈다발을 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감췄다. 일반 그루지아인들은 최근에서의 그의 얼굴을 알 수 있을 정도 였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한사코 고사했고, 사진조차 찍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그 많은 재산을 형성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보니까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그를 한 때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의 제목을 빌려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끝도 없이 나오는 그의 재력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바니쉬빌리는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국정에 실망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사카슈빌리가 권력의 화신이 됐다고 비판하며면서 한때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그는 3년전에 그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더욱이 재선 과정에서 벌어진 비리들을 목격하면서, 그는 사카슈빌리 대통령에게 맞서기로 맘을 먹은 것이다.

그 결과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 이바니쉬빌리는 5개월 전에 ‘그루지아의 꿈’이라는 정당을 조직하고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되면 1년 내에 그루지야를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2~3년이면 유럽 수준의 정치시스템을 구축할 것으로 자신했다. 하지만 그루지아 경제의 경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루지아의 몽테크리스토백작 이바니쉬빌리는 과연 자신이 쌓아올린 막대한 재산처럼, 그루지아 정치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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