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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초대석]철도 민영화가 아니라 경쟁 체제 도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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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공기업에서 원칙준수는 생존을 좌우한다."

부담이 적잖은 듯 했다. 삼성SDS의 부정당업자 제재를 앞둬서였던 것 같다. '원칙'을 중시하는 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취임 이후 삼성SDS에 대해 강경한 방침을 고수했다. 삼성SDS가 지난 2008년 10월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 선로전환기 납품 입찰에서 스페인 고속철도에 300km/h 공급실적이 있는 것처럼 허위서류를 제출해 사업을 따냈다는 이유에서다. 공단은 지난 11일 관련 법규에 따라 계약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삼성SDS를 6개월동안 부정당업자로 지정했다.
찬바람이 불고 추운 상태에서 산행을 해서 그런 것이라고만 볼 수 없었다. 다부진 체격의 김 이사장은 스스로 소신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 듯 했다.

"사실 그 회사에 웬만하면 알 수 있는 분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안면이 있는 분들이 있는 회사라고 해서 공공의 안녕을 해치는 행위를 봐줘서야 되겠느냐"고도 했다.

그는 이런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내부 단도리부터 시작했다. 입찰서류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해 잘못된 선로전환기가 납품되도록 한 것에 대해 국민에 사죄한다고 발표했다. 자신이 근무하던 시절 생긴 일이 아니었지만 CEO로서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다.
이로인해 해당업무를 담당했던 직원들은 퇴직 또는 징계처분을 받기도 했다. 또 명예퇴직을 원하는 직원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미 명퇴처리된 직원의 명퇴수당을 회수하는 방안까지 강구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같은 원리원칙주의 때문일까. 철도건설과 관련한 안전사고가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철도건설현장 안전사고는 전년도보다 43% 급감한 20건에 불과했다. 해마다 건설물량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도 2004년 철도공단이 출범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규칙을 제대로 지키라는 불호령을 내리고 이행여부를 철저히 관리감독한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김 이사장은 "어떤 현장에서도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시스템을 갖춰 사고율을 더욱 낮출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 전반에 대한 김 이사장의 집요한 추진력 덕분에 공단은 2011년 최우수 공공기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최근 3년간 중소기업 지원평가에서 12개 기관중 중하위권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변화다. 김 이사장이 밀어붙인 '혁신 드라이브'가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며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공단의 선진화, 철도경쟁체제 도입 등 만만치 않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철도운영 경쟁체제'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데.
▲항간에 민영화라고 표현하지만 그건 맞지 않다. 예를 먼저 들겠다. 제2민항 도입 당시를 돌아보자.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나항공이 들어오면서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됐다. 2005년에 저가항공사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은 낮은 요금으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철도도 마찬가지다. 2015년 개통될 호남고속철도와 수서발 경부고속철도 운영기관에 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지금의 철도운영기관과 다른 사업자가 나타나면 경쟁이 본격화되고 국민들은 낮은 요금으로 수준높은 철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코레일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논리를 펼치는 것으로 이해된다.
▲공공기관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는 것은 옳지 않다. 제2민항 사례를 다시 보자. 공항의 경우 국가예산으로 건설하지만 운영주체들이 항공기를 확보해 사업을 영위한다. 도로와 항만도 정부가 시설을 건설하지만 차량이나 선박은 운영주체가 조달해 영업을 한다. 철도 역시 마찬가지 논리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 유일하게 철도만 건설과 운영 모두 정부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이제는 철도 운영에 경쟁체제가 도입돼 정부예산을 들이지 않고 철도차량을 조달할 필요가 있다. 현재 코레일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고속철도 건설재원으로 공단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호남권 50%, 수도권은 60% 이상을 부담하게 돼 오는 2015년 24조원 이상의 부채누적과 연간 이자가 1조원(1일 27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운임을 낮추고 서비스를 높여 이용객을 늘릴 수 있는 기관에서 운영토록 해 투자비 회수와 건설부채 상환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민들에게 철도운영의 제2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쉬운 부분이다. 사실 코레일이 경부고속철의 경우 독점운영하며 28% 이상 흑자를 내고 있음에도 선로사용료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시설공단의 부채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정작 코레일은 평균 6000만원 이상의 과다한 인건비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다. 예컨대 매표업무가 거의 없는 수도권전철 매표원 유지, 단순 업무 직원도 3급(차장)까지 자동승진, 열차운행이 없는데도 3조 2교대 근무 등 비효율 방만 경영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다.
철도운영의 제 2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반대하고 있는 점과 SNS(소셜네트웍스)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정확한 사실 및 근거에 대한 확인 없이 괴담 수준의 주장들이 전파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경쟁체제를 통한 고속철도 운영으로 질적 개선을 이뤄야 한다.

-부임 이후 공단경영이 눈에 띄게 호전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공단에 대한 정부 평가도 달라졌는데, 일부에서는 직원들 사이에서 '혹독한' 상사라는 평까지 듣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동안 공단은 3년 연속 청렴도 최하위, 안전사고, 철도이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건설로 인한 이용자 불편 초래, 분산시공에 따른 비효율·낭비, 부채부담 등 공단 창설 이래 최대의 경영위기 상황이었다. 작년 8월 부임 초 공단의 조직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부장 이상 간부의 11.3%인 28개 직위를 폐지하거나 통합해 대본부(大本部) 대처(大處), 강소조직 체제로 바꾸는 혁신적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와 함께 모든 간부직위에 대해 희망자의 직무수행계획서를 제출받아 가장 우수한 인재를 임명하는 '전 간부직 공모제'를 도입해 성과와 업무능력을 중시하는 일하는 조직으로 조직 분위기를 바꿨다. 일부 직원들은 강성인 경영스타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최근 가시적인 공단의 긍정적인 평가에 따라 이해하고 동참하고 있어 머지않아 우리 공단이 아주 건강하고 능률적인 강소조직으로 거듭날 것으로 확신한다. 평소 '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잘못을 해 놓고 고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잘못'이라는 뜻이다. 조직이던 철도산업이던 지금 고치는 것이 힘들더라도 나중을 위해 지금 고치는 것이 필요할 때다.

-앞서 조직 개선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공단의 부채 급증 개선을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공단은 작년 12월 1일 철도강국을 향한 뉴비전 선포식을 갖고 '운영을 고려한 건설계획'과 '과잉시설 없는 경제설계' 등을 6대 경영방침으로 천명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호남고속철도 공주, 익산, 정읍 등 3개역에 불필요한 과잉시설을 없애고 서원주역, 만종역, 남원주역 등에 대해서는 역사규모 조정 및 화물기능 축소 등 이용자 및 운영자 중심으로 철도가 건설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공단은 과잉시설 없는 경제적인 설계를 통해 사업비를 지속적으로 절감해 나갈 방침이다. 절감된 사업비에 대해서는 정부와 협의해 더 많은 철도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재원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그동안 철도건설 사업이 민원 및 지자체의 요구에 따라 과잉 설계돼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측면이 많았다. 예컨대, 호남고속철도 정읍역사 신축에 대해서도 현재 과잉설계를 재검토하고 있으며 정읍시의 인구(12만명)와 수송수요(1일 최대 4566명) 감소추세를 감안해 우선 기존 역을 활용해 증축하고 단계별 건설 방안을 정읍시 및 국토해양부와 협의하고 있다.

-철도 교통의 미래에 대해 전망한다면.
▲도로는 아무리 건설해도 교통체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지자체마다 도로를 건설해달라고 했으나 지금은 철도를 건설해달라는 요구가 많아질 정도다. 무엇보다 철도는 '녹색성장'을 실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수단이다. 승객 100만명을 1km운송하는데 도로가 166t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만 철도는 6t으로 28분의 1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적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다. 특히 오는 2020에는 고속선과 복선전철이 많아지게 되고 반대로 인구는 줄어들게 된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된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대중교통의 이용을 편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환승시스템을 편하게 하고 접근성을 높이면 유럽처럼 도심에서 출발해 도심까지 갈 때 열차를 많이 이용하게 될 것이다. 계단을 줄이는 방안이 꼭 필요하다. 이에 따라 운영측면을 고려해 이용객 입장에서 설계하고 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신설된 고속철도 기차역들은 대부분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이 철도이용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는 철저하게 이용객 편의를 고려할 방침이다.

-올해 공단에서 착공 예정인 사업은 어떤 것이며 추진 계획에 대해서 말해달라.
▲공단은 평창 동계올림픽 지원과 지역 개발을 위한 원주~강릉 철도건설 사업을 이달 부터 순차 발주하고, 인천공항에서 평창을 연결(인천공항~용산`청량리~서원주~진부)135.9km를 위해 공항철도와 경의선 연결사업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홍성~송산) 등 9개 사업 역시 올해안에 착공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올해 5월에 열리는 여수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4월까지 전라선을 최고시속 230km까지 고속화하고, 수인선 송도~오이도, 분당선 중 왕십리~선릉과 기흥~방죽, 경의선 공덕~DMC, 중앙선 용문~서원주 복선전철 등 9개 사업을 개통할 예정이다.
특히 공단은 이들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국고 4조7305억원과 공단 자체조달 1조8178억원 등 작년 예산보다 14.4%가 증가한 6조5483억원을 집행하고 이중 65%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해 건설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공단이 적극 앞장설 계획이다.
대담=소민호 부장
정리=진희정 기자

◇김광재 이사장은....

"얕은 산이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준비운동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산행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작은 공터에서 준비운동을 하며 김광재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하 이사장)이 건넨 첫마디였다. 김 이사장은 평소 바쁜 일정으로 짬을 내기 힘들지만 한 달에 한 두번은 동네와 가까운 대모산을 찾으며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체력을 바탕으로 김 이사장은 틈만나면 전국의 공사현장을 찾아 직원들의 느슨해진 '안전의식'을 다잡고 안으로는 조직개편과 인사혁신을 통해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김광재 이사장은 행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해 건설교통부와 국토해양부에서 주요 보직을 거친 인물이다. 공직 당시 직원들에게 강조한 점에 대해 '정확한 사실 확인'이었다고 회상한다. 김 이사장은 '사실 확인이 잘못되면 정책이 달라지고, 탁상공론 정책이 될 수 있다'며 "모든 문제의 해결은 현장에 답이 있다"강조했다.



진희정 기자 hj_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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