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떨어진 종이책에 뭐가 있다고? 이시대 看書癡, Book치고 나섰다

[BOOK]종이책 읽기를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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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상(相)에는 여러 상이 있다. 얼굴의 생김새를 보는 관상(觀相)이 있으며, 집의 위치나 구조를 헤아리는 가상(家相)이 있다.


그런가하면 서상(書相)이라는 것도 있다. 서가에 꽂힌 책의 질과 양을 따져보는 것이다. 서상을 보면 그 사람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서상이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이 시대에 '종이책'을 고집하는 김무곤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장이 바로 그다. 그는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을 넘어 권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권함이 묘하게 설득력을 가지니 신기하다. 인사동 고서점과 일본 고서점 얘기로 풀어내는 책 읽는 이유. 속독학원과 서당을 연이어 다닌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책 읽는 법. 하나 같이 다 진실하다. 그리고 따뜻하다.

김 원장에게 종이책은 아버지면서 또 딸이다. 그가 유난히 종이책에 마음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연은 이렇다.


김 원장이 중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비어있는 건너 채로 아저씨 몇 분이 책을 나르고 있더란다. 새로 누가 이사를 오는 줄만 알았던 김 원장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불쑥 말씀하셨다. 그 방의 책들이 다 너희들 것이라고 말이다.


건너 채 셋방에서 매달 나오는 방세가 참 소중했을 그 때, 아예 방 하나를 비워 자식들을 위한 도서관을 만든 아버지. 종이책은 그렇게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 됐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낳은 큰 딸의 얘기도 있다. 빠듯한 살림살이를 하던 그 시절, 고서점에 있는 책이 탐이나 통장의 돈을 몽땅 빼서 나갔다 온 기억. 그 때문에 아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멜론 하나를 사줄 수 없었던 아내의 싸늘한 표정.


아내는 그날 처음으로 그에게 소리를 지르곤 딸 손을 잡고 그대로 나가버렸다고 한다. 사정한 끝에 아내와 딸을 집으로 데리고는 왔지만, 그는 아직도 그 미안함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멜론만 보면 집에 사들고 오는 이유다. 종이책은 이만큼이나 김 원장에게 애틋함으로 남아 있다.


그런 그가 말하는 구극(究極)의 책 읽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다. 시험에도, 취업에도, 농사일에도 도움은 안 되지만 이런 책 읽기야말로 쾌락이 충만하니 제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또는 아내에게 '도대체 그 책을 읽어서 어디다 써먹을 거냐'는 핀잔을 받는 책 읽기야말로 더 할 수 없는 쾌락을 안겨준다고 전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를 많이 한 사람이 목적 있는 책 읽기만을 한 사람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더 깊고 따뜻하다는 걸 보았다는 김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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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그의 서상을 꼭 헤아려보고 싶다.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종이책 읽기를 권함'을 읽는 것으로 위안 삼아야겠다.


종이책 읽기를 권함/ 김무곤 지음/ 더숲/ 1만2000원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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