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박쥐같은 대출영업'
- 대기업 치중하다 외환위기 이후 가계로 선회
- 가계부채 커지니 다시 대기업..中企는 외면
[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 국내 은행들이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고 시류에 편승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은행들은 과거 대기업대출에 주력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계대출로 방향을 바꿨는데 최근 들어 가계대출 문제가 불거지자 다시 대기업대출로 선회하고 있다.
24일 한국은행 추계에 따르면 은행 대기업대출 잔액은 올 9월말 현재 108조748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1조4032억원(24.5%) 늘었다. 이에 비해 중소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은 각각 15조1582억원(3.5%), 18조2153억원(4.2%) 증가하는데 그쳤다.올 들어 가계부채가 800조원을 넘어서면서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옥죄기에 나서자 은행들이 대기업으로 눈을 돌린 것.
외환위기 이전 은행들은 주로 대기업대출에 열중했으나 외환위기로 대우ㆍ쌍용ㆍ기아그룹 등이 해체 되면서 은행도 도산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168조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해 이 중 87조원을 은행에 투입했다. 막대한 혈세가 들어갔지만 은행의 영업 행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장기적인 성장모델보다는 단기수익에 치중해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가계대출 사태가 단적인 예다. 단기이익에 치중해 무분별하게 주택담보대출 등을 취급하면서 가계부채 문제를 키웠다.
집계 기준이 일부 바뀌어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한은 자금순환 통계를 보면 이 같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1968년 국민계정체계(SNA) 기준 금융자산부채잔액표에 따르면 예금은행들은 1990~1997년에 총 119조3399억원의 기업대출을 취급했다. 같은 기간 가계 및 비영리단체에는 절반에 못 미치는 52조7649억원의 대출을 해줬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1998~2005년에는 기업대출이 132조7840억원인데 비해 가계ㆍ비영리단체에는 그 2배에 달하는 254조3811억원을 빌려줬다.
물론 대기업들의 은행 의존도가 낮아진 탓도 있다. 은행대출보다는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들이 장기적인 성장모델보다 눈앞의 손쉬운 이익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올해만 해도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대기업ㆍ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자금난이 심했지만 은행들은 대기업에 더 적극적으로 돈을 빌려줬다. 은행 입장에서 대기업대출은 위험 부담이 적고 별다른 노하우도 필요치 않아 영업이 쉽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이 과거에는 대기업대출에 주력하다가 외환위기 이후부터 가계대출로 눈을 돌렸다"며 "이제 과도한 가계대출이 도마 위에 오르자 다시 대기업대출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금융 및 산업계에서 성장을 이끌 주력은 중소기업"이라며 "시중은행들이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성공적인 중소기업 지원모델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 국내 시중은행에서는 중소기업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지원에 노하우를 갖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산업ㆍ경영연구실장은 "국내 은행권에 쏠림현상이 심한 건 사실"이라며 "중소기업의 경우 리스크가 크다고 보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기업 위주로 대출을 해주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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