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가 재능인 시대

[아시아경제 박지선 기자]


라운드에 여자 후배와 가겠다고 하면 남자 동반자 반응은 한결같다."예뻐? 골프 못 쳐도 상관없어. 이쁘면 다 용서돼."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골프까지 못 치면 나는 죄인이지"라고.

공연 뒷풀이. 서른 명쯤 모인 자리에 여자는 모두 일곱 명. 기자 옆에는 항공사 승무원이 앉았다. 그녀는 기자보다 열 살 어렸고, 기자보다 키가 컸고, 절대적으로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한마디로, 예뻤다.


기자와 그녀는 처음 만난 사이였고 그 자리에 모인 이들 대부분과도 첫만남이었다. 남자들은 인사할 때 그녀에게 "미인이시네요"를 빼먹지 않았다. 기자와 눈이 마주치면 건조한 음성으로 "반갑습니다"를 남겼다. 기자는 그 자리에서 미모와 상냥함에 밀려 투명인간이 된 듯했다.

사람들은 예쁜 것에 호의적이다. 학창시절 CF까지 촬영했던 예쁜 후배가 있다. 후배와 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아가씨. 깎아 줄게"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녀와 음식점에 가면 맛있는 서비스 메뉴를 맛볼 수 있었다.


거울을 본다. 기자는 예쁘지 않지만 못생겼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얼굴로 승부내는 직업이 아니니 살아가는 데 무난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스타일 토크】나는 예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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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달걀형으로 갸름하게 얼굴형 다듬고, 눈밑 지방을 제거해 젊은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다.


예뻐지려면 돈을 쓰라고 충고하는 이들이 많다. 미용을 위해 1년에 억원대 회원권을 구입하고, 잔주름을 제거하는 데 1회 300만원짜리 시술을 받는 세상이다. 그런 시술을 기자도 한다면 예뻐질까?


타고난 미모가 아니라 투자하고 쟁취하는 미모라면 기자는 패자다. '유전미모'라 했으니 '무전추녀'는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겨우 위안 삼는 것이 있다면 '나이 들면 팔자 피는 관상'이라는 용한 분(?)의 덕담. 그런데 얼마나 더 나이들어야 하는지 요즘 같아서는 여간 궁금한 게 아니다.


150여명의 여자가 참가한 골프 대회에 초청받은 일이 있다. 베스트 드레서 수상자 선발을 위한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수영복 입은 남자를 보러가는 길도 아니고, 큰 기대가 없던 그 자리에서 특별한 깨달음을 얻었다.


비슷한 골프 옷과 모자. 참가자들도 비슷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어떤 이는 품위를 발산했고 어떤 이는 천박함을 풍겼다. 행동, 말솜씨 그리고 얼핏 보여지는 표정,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가 고급스러움과 천박함을 뒷받침했다.


첫인상에서 어떻게 그런 기운을 느꼈을까? 쇼펜하우어는 '첫인상'은 믿을 게 못된다고 지적한다. 객관적인 눈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쇼펜하우어는 사람을 제대로 보려면 재능과 성격을 구분하라 했다. 재능은 표면으로 떠오르고 성격은 바닥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에 섣불리 첫인상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얼굴이야말로 진짜라고 했다.


미모가 재능인 세상. 돈이 아름다움을 살 수 있는 세상. 예쁘다는 소리는 못 들어도 천박하고 싶지 않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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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 기자 sun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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