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6월1일 교보빌딩 광화문사옥 준공 기념식에 참석한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사진 왼쪽)와 박영수 당시 서울시장(가운데), 민복기 당시 대법원장(오른쪽).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설립된 교보문고는 그렇게 30년 동안 우리 곁을 지켰다. 올해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개점한지 꼬박 30년이 되는 해다. 사진=대산 신용호 기념사업회 제공

1981년 6월1일 교보빌딩 광화문사옥 준공 기념식에 참석한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사진 왼쪽)와 박영수 당시 서울시장(가운데), 민복기 당시 대법원장(오른쪽).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설립된 교보문고는 그렇게 30년 동안 우리 곁을 지켰다. 올해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개점한지 꼬박 30년이 되는 해다. 사진=대산 신용호 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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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개점 30주년. 단일면적으로 세계 최대 수준인 매장 면적 8598㎡. 1000만 명이 넘는 회원. 30년 동안 판매한 책의 부수 4억500만권. 1981년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세운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가 일궈낸 것들이다. 그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30년 전 오늘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문을 열었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쥐어 준 링컨 전기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던 그는 청소년들이 책으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교보문고 설립을 결심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그의 말에 교보문고 설립 취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1917년 8월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학교 한 번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독립운동가였던 맏형과 셋째형을 둔 그의 가족이 진작부터 항일가족으로 지목돼 일제의 감시를 받고 있었던 탓이다. 정규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그는 독학으로 한학과 서학을 공부했고, 20살이 되던 1936년엔 더 큰 세상을 공부하려 혈혈단신 중국으로 떠났다. 그 곳에서 집안어른인 신갑범 선생의 도움으로 이육사 등 애국지사들과 연을 맺게 된 그는 북경대학과 화북대학 진학을 포기하면서까지 독립운동을 위해 뛰었다. 조국광복이라는 목표 앞에서 면학에만 몸을 담고 있을 순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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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끔찍이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1946년 귀국 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해방 직후 빈곤과 불안, 실의가 가득 찬 조국의 현실을 마주한 그는 무엇이 나라에 헌신하는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일한 정답이 교육에 있음을 확신한 그는 '교육보험'을 창안해 1958년 대한교육보험회사(현 교보생명)를 창립했다. '담배 20개비를 피우는 대신 그 돈을 보험에 투자하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교육보험은 세계 최초 교육보험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에게 세계보험협회(IIS) 세계보험대상을 안겨줬다.


임직원들에게 늘 '우리 사업이 국가사회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을 잊지 마라' '열심히만 해선 안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던 그는 1981년 독서인구를 늘리고 민족문화를 발전시키려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교보문고'의 탄생이었다. 국민교육진흥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그는 첫 해에 책 93만3000권을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1999년엔 판매 부수 1000만권 훌쩍 넘겼다. 그렇게 민족과 국가를 위해 평생을 바친 그는 지난 2003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지 8년이 되는 올해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개점 30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4억500만권, 개점 이후 지금까지의 판매 부수. 이 숫자에서 '매사에 땀내 나는 정도까지 노력하라'는 그의 철학이 그대로 묻어난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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