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GS칼텍스의 주유소 나눠먹기 자진신고는 리니언시를 일종의 '보복 무기'로 사용된 전형적 사례다. LPG 담합이 들통났을 때 SK가 먼저 자진신고를 하는 바람에 558억원의 과징금을 맞은 때를 기억한다면, 통괘한 복수인 셈이다. 노상섭 공정위 시장감시국 시장감시총괄과장 역시 "기업들이 보복무기로 자진신고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종의 차도살인(借刀殺人)인 셈이다.


자진신고가 이같이 보복무기로 애용되는 까닭은 담합 사실을 처음 신고한 업체에는 과징금을 100% 면제해 주기 때문이다. 첫 신고만 한다면 담합을 실컷하고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수 있다. 검찰 고발도 면제된다. 2순위 신고자 역시 과징금의 50%를 깍아준다.

자진신고의 장점은 또 더 있다. 과징금 책정에는 담합기간이 고려되는데, 담합 시작시기는 비교적 명확히 특정할 수 있지만 종료시점은 확인키가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담합기간이 길게 잡히고 과징금도 무거워진다. 신영선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담합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면을 남기는 방법으로 담합 종료를 확인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물론, 담합을 끝냈다는 구체적 물증을 들이미는 건 담합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런 까닭에 정유사들은 담합종료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고, 공정위는 정유사들의 담합이 최근까지 진행됐다고 봤다. 그만큼 과징금 액수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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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를 통해 담합이탈을 특정할 수 없자, 경제적 분석 모델로 이를 증명하는 시도도 있었다. SK가 그랬다. SK네트웍스가 워크아웃에 들어선 2004년 이후 시장에 구조적변화가 있었다는 게 SK측의 주장이었다. 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곧 담합이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김종만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와 김대욱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도 제출했다. 그러나 SK는 결국 공정위에 "죄송하다"고 사과해야했다. 자료가 엉뚱한 데이터를 기초로 해 작성됐다는 사실이 최미강 공정위 사무관에게 들켰기 때문이다. SK는 다시 다른 데이터에 기반한 자료를 제출했지만 이도 틀렸다는 게 들통났다. 노상섭 과장은 "경제분석은 담합을 입증하는 데 쓰이는 보조자료"라면서 "팩트의 힘이 더 크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자진신고가 보복무기로 사용되지 않냐'는 지적에 오히려 그런 상황을 환영했다. 기업들이 서로 불신하면서 담합을 쉽게 하지 못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불신하는 바람에 최악을 선택을 하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기업들이 빠진 것이다.


박현준 기자 hju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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