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소니의 별이 지다.. 오가 노리오 전(前)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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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의원 기자] 일본 소니 왕국을 일군 오가 노리오 전 회장이 23일 오전 9시14분께 도쿄 시내 한 병원에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였다.


일본 주요 언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외신은 25일(현지시간) 소니사를 글로벌전자기업과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성장시킨 오가 노리오 전 회장이 타계했다고 전했다.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에서 “소니사가 음악, 영화, 게임에 이르는 제품을 만들고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사로 발전한 것은 그의 예지력과 비전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회고했다.


이어 “오가 사장은 일본의 다른 기업들이 해내지 못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기업으로 소니사를 키웠다”고 덧붙였다.

오가가 소니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흥미롭다. 오페라 성악가를 꿈꿨던 오가 사장은 도쿄예술대 성악과 학생시절 소니의 녹음 테이프 질이 너무 낮다고 회사측에 편지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회사 공동 창업주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1908∼1997)와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1921∼1999)의 설득에 음악과 일을 병행한다는 조건으로 소니사에 입사했다.


그는 소니에서 승승장구했다. 입사 첫해인 1959년에는 부장으로 1964년에는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후 1982~1995년 소니의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소니사를 국제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켜 글로벌 기업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오가 사장의 음악적 예술성과 소리에 대한 예리한 감각은 이후 콤팩트디스크(CD)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 소니는 필립스사와 CD 공동 개발에 나섰고 1982년 소니사가 먼저 상용화 시켰다. 당시 오가 사장은 “CD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고 75분짜리 규격을 고집했다. 75분짜리 CD 규격은 현재까지 CD 표준 규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1989년에는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현재의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34억 달러에 사들였다. 당시 “소니가 미국의 영혼을 샀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이후 영화산업과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도 제작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아울러 그의 시각 디자인과 마케팅에 대한 깊은 이해는 소니 로고를 창안하는 데 이바지했다.


소니사는 성명에서 “오가 사장은 소비자들의 눈에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제품 출시를 열정적으로 옹호했고 이러한 원칙은 소니사의 디자인과 기술을 대표하게 됐다”면서 “소니사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성공하는데 주요 전략이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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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대학시절의 꿈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음악가로서의 피가 흘렀던 그는 도쿄 필하모니교향악단(도쿄필)과 베를린 필하모니교향악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과도 깊은 우정을 나눴다. 폰 카라얀은 오가 사장을 ‘부조종사’로 불렀고 오가 사장은 폰 카라얀을 ‘나의 대장’이라고 호칭할 정도였다.


1999년에는 도쿄필 회장에 취임했고,2003년에는 소니로부터 받은 퇴직금을 일본 휴양지인 가루이자와에 콘서트홀을 짓는데 기부했다. 다음 달 4일 이곳에서 동일본 대지진의 이재민을 지원하기 위한 도쿄필의 공연을 지휘할 예정이었지만 이제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이의원 기자 2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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