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중국판 민족개조론 '중국식 모델은 없다'
[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중국식 모델은 없다' 천즈우 지음 / 박혜린, 남영택 옮김 / 메디치 / 1만8000원.
몇년 전 중국 남부를 여행하다 한 현지 대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그는 자본주의 경제학과 공산주의를 함께 공부한다고 했다. 둘 다 시험과목이라는 것이다.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그가 오히려 반문했다. "두 이념 사이에 대체 무슨 갈등이 있다는 거지요?"
대립하는 두 체계를 상황에 따라 대범하게 취사선택하는 중국의 문화적 깊이에 경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 그 사이 몇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중국 정부는 세계 곳곳에 500여개의 공자 학당과 공자 학원을 설립하면서 유교 부활에 팔을 걷고 나섰다. 자본주의 경제, 공산주의 정치, 유교 문화란 세 아이콘을 한데 기워내겠다는 의도다.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천즈우(陣志武)는 중국 정부의 이런 시도를 일갈한다. 이런 식으로 좋아 보이는 것만 골라서 운용하겠다는 생각은 결국 파탄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중국 역시 세계화 물결의 수혜자임을 자각하고 금융을 위주로 정치와 사회문화를 재편하라고 제안한다.
값싼 인건비는 언젠가 오늘 것이고, 저임금을 배경으로 성장한 중국의 제조업은 한계에 다다른다는 게 중국 산업구조에 대한 그의 전망이다. 이를 돌파하려면 금융과 같은 서비스 산업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정치와 사회문화 제도 개혁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가령 지적재산권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지금처럼 짝퉁만 양산해낼뿐 고급 브랜드 제품 육성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천 교수가 제시하는 건 중국판 '민족개조론'이다. 사회문화적으로는 유교를 분쇄하고, 정치적으로는 투명한 체제(민주주의)를 구축하자고 한다. 천 교수에 따르면 유교는 '효'라는 건 일종의 종신연금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장한 것이다. 젊은 부모가 자식에게 투자를 하고, 자식이 크면 부모를 봉양해 노후를 보장받는 제도다. 이 때문에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사랑 보다는 돈과 얽혀서 너저분해진다. 차라리 연금제도를 사회적으로 구축한다면 부모와 자식 관계가 돈에서 해방돼 더욱 정서적으로 친밀해질 거라고 천 교수는 지적한다.
천 교수는 또 "사회단체와 전문가가 참여해 이성적이고 투명한 과정을 거쳐 정책을 만들어야 하고, 이런 사실을 주변국에도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높은 담장 너머에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려 정책을 만들어내는 만큼 주변국가와 시민들의 불신만 살뿐이란 것이다. 중국은 이데올로기에 기해 쿠바,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나라는 "주요 수출 대상국도, 석유나 기타 자원의 공급처도 아니다"고 냉정하게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천 교수는 미국의 치세(治世)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 옹호한다. 중국이 커진 힘을 믿고 대국굴기를 내세우며 미국과 충돌하면, 물류비만 증가시키고 수출시장만 줄일뿐이다. 천 교수는 여기서 따끔한 말을 놓치지 않는다. "중국이 세계를 주도할 차례라고 하기 전에 우선 세계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치세 이념부터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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