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무아마르 카다피를 항상 곁에선 지켜온 미모의 우크라이나 간호사가 결국 그를 버리고 떠났다. 카다피는 "그녀 없이 아무 것도 못한다"고 여러번 언급한 적 있다. 그녀는 9년 전 리비아의 한 병원에서 일하다 카다피의 전속 간호사가 됐다. 30대 후반으로 알려진 클로트니츠카야는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된 외교 문서에서 '관능적인 금발'로 묘사돼 있다.
  
독재자와 간호사, 둘은 도대체 어떤 관계였을까 ? 단지 이런 예는 카다피에게만 국한되는 건가 ? 금발의 간호사는 카다피를 제대로 돌보았으며, 적절한 약물을 투여했을까 ? 그저 의사가 시키는대로 링거나 주사바늘을 꼽는 정도였을까 ? 그녀는 여전히 '백의의 천사'였을까 ?


지금도 수많은 간호사들이 병자들의 몸에 주사바늘을 꽂아넣고 있다. 간호사들은 환자가 독재자였든 성인였든 병자 몸에 주사바늘을 꽂는 것은 그들의 숙명이다.

그들은 대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의료행위를 펼치지만 언제나 수동적인 상태만은 아니다. 때로 의사들이 잘못된 처방에 대해 침묵하는 방식으로 동조하기도 한다. 실제 병자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의사보다 간호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병자가 간호사에게 의존적일 수 있는 이유다. 따라서 간호사의 역할이 비단 의사의 보조자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1800년대 중반 크림전쟁 당시 '등불을 든 여인'으로 불리는 나이팅게일에게 터키 스쿠타리에 있는 야전병원 간호 책임이 맡겨졌다. 처음 전장에 도착했을 때 쓸만한 시설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욱이 그녀를 경악시킨 것은 숙소조차 들끓는 쥐와 벼룩들이었다. 물도 없었다. 한 사람이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이라고는 약 0.57ℓ에 불과했다. 간호사들에게는 식량도 안 주어졌다. 의사들은 간호사들을 병동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반감은 부상당한 병사들에게서도 나타났다. 그녀가 현장에 도착한 바로 그날 인키르만 전투로 야전병원은 부상병들로 붐볐다. 각종 의료기구와 옷, 침대 등 모든 것이 부족했다. 부상병들이 오물에 절은 짚단을 깔고 살았다.그녀와 간호사들은 청소용 솔로 병원을 닦아내고, 환자의 더러운 옷들을 세탁하면서 전투 아닌 전투를 치뤄나갔다.

이런 환경과의 싸움속에서 나이팅게일은 '보건위생'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그러나 나이팅게일처럼 천사같은 간호사만 있는 건 아니다.


'아인슈타인'에 비견되는 스티븐 호킹의 아내는 간호사 출신이다. 외신들은 그의 아내가 스티븐 호킹을 돌보기는 커녕 학대하고, 상습 폭행을 일삼는다고 전한 바 있다. 그의 아내는 스티븐 호킹의 저술, 업적이 온전히 자신의 소유가 될 때까지 그를 괴롭힐 것이라는 혐의를 받아온 지 오래다. 호킹 박사는 수년간 잦은 부상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24시간 휠체어에서 지내는 호킹 박사는 손목이 부러지거나 목에 칼자국이 나고 입술이 터지는 등 심각한 부상을 계속해서 당했다. 이에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호킹 박사는 "사생활에 개입하지 마라. 조사를 계속하면 경찰을 고발하겠다"고 반발, 조사가 중단됐다.


경찰이 다시 조사에 나선 것은 지난해 여름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호킹 박사가 자신의 집 정원 한가운데 방치됐다가 열사병에 걸리고 화상을 입으면서부터다. 때문에 호킹의 아내에 대한 의심은 끊이지 않았다. 아마도 간호사이기 때문에 받는 의심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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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 혹은 독재자들 곁에는 그들의 육신을 관리해주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늘 있다. 간호사는 아니더라도 간호사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내들이다. 위대한 예술가의 아내 중에는 간호를 핑계로 남편 목숨을 연장시키거나, 육신을 괴롭힌 경우도 있다.제때 죽지 못하도록 약물을 투여하고, 예술가의 뜻과 상관없이 마약에 중독시키는 사례도 나타난다. 왕실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왕의 목숨을 두고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조작하기도 한다. 심지어 왕을 독살하는 일에 가담해 역사를 뒤바꿔 놓았으니 그나마 오진은 상당히 애교스런 수준일 수도 있다.
  
간호사들을 얘기하자면 의사들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서 둘은 일란성이다. 의사(간호사)들은 독재자들 곁에서 그의 육신을 돌본다.그러나 단순히 그 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후에는 최종적으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한다. 그 진단서는 어느 경우 유언장보다 무서운 위력을 발휘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역사는 의사들에 의해 주물러지는 일도 있다. 의학적 실수는 봐 줄 수 있다. 그러나 잘못 된 의사와 간호사의 행동때문에 받게될 일반인의 고통은 쉽게 기록되지 않는다.
  
독일의 나치 집권 당시, 대부분의 의사, 간호사들은 나치 집권 자체를 적극 환영했다. 이들은 끊임없이 히틀러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히틀러의 주치의가 되거나 간호를 맡는다는 것은 큰 행운였고 자신의 명성을 키우는 지름길였다. 히틀러는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를 거느렸다. 그 중에서 테오 모렐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모렐은 다른 의사들을 '멍청이' 취급하며 히틀러의 총애에 황홀해 했다. 다른 의사들도 테오모렐을 '돌팔이' 취급했다. 모렐 곁에서 수많은 간호사들은 독재자에게 지속적으로 다량의 향정신성 약물을 투여했고, 강제로 주입된 각성제로 뇌를 손상시켰다. 이들은 출세와 성공을 위해 방조하고 침묵했다.즉 공범자들인 셈이다.
  
히틀러는 전쟁 막판에 더욱 약물에 의존했다.그의 육신도 영혼도 주사바늘에 의해 다 말라갔다. 끝내 그는 타인의 손에 폐인됐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오염된 육신을 이끌고 잔혹한 대량살상에 몰두하기에 급급했다.
  
아르헨티나의 성녀 '에비타 페론'의 경우는 의사, 간호사들과 주변 정치인들이 저지른 행각이 더욱 소름 키칠 지경이다. 죽음의 존엄함은 커녕 그녀가 죽기직전까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몰랐으며 육신을 비열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정치적 동지들은 자궁암을 맹장염이라고 속였으며 그녀의 의도와 상관없이 수술을 감행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에비타는 자신의 병이 어느 상태인지 모른채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심지어는 그 당시 검증되지 않은 '질경'이라는 진찰도구가 사용됐다. 의사, 간호사와 동지들, 남편조차 이런 일에 동조하고 협잡했다. '빈자의 성녀'가 죽지 않도록 다량의 몰핀도 투여했다. 마침내 남편의 선거가 승리했을 때는 암이 간과 폐에 퍼진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겐 사후에도 안식이 주어지지 않았다. 서른셋. 그녀의 주검은 방부처리돼 유리관에 안치,대중에게 공개됐다가 가명으로 매장되거나 여기저기 옮겨졌다. 순전히 정치적 협잡꾼들에 간호사들은 적극적인 협력자가 된 것에 다름 아니다.
  
역사의 페이지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끼어 있다. 그들은 정치가들이나 권력자들의 육신을 돌보며 명성을 얻기도 하고, 권력을 갖기도 했으며, 다른 권력가들과 끊임없이 결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진시황 곁에서 불로장생을 외친 수많은 명의들도 그러할 것이다. 이들은 탐욕과 명성에만 집착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시황이 어떻게 영생에 집착했겠는가 ?


물론 이런 간호사들은 극히 드문 예인데다 자발적인 가해자는 아닐 것이다. 다만 권력자 곁에 있는 미모의 간호사라면 호기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카다피의 간호사는 어떤 역할을 수행했을 지 다음 역사가 밝혀주리라.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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