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줄줄이 오른 등록금 "대학 압박만으론 한계"
[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는 이 충고는 2005년 미국의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에 초청받은 '애플'사의 CEO 스티브 잡스가 한 연설의 마지막 문구로 유명하다.
그는 이날 졸업축사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을 고백해 화제가 됐다. 그는 입양아였다. 대학원생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그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하며 조건을 내걸었다. 대학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양부모는 노동자 계급이었지만 그 약속을 지켰다. 결국 그는 리드칼리지 물리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 학기만에 대학을 그만 둔다. 너무나도 '비싼 등록금' 때문이었다.
잡스는 졸업 연설에서 "나는 부모님들이 평생 저축한 재산을 축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믿으면서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양부모가 자신을 위해 피땀 흘려 모은 돈을 계속 쓰게 할 수 없었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잡스도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대학에 계속 남아 수업들을 청강했다. 친구의 기숙사 방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공짜밥을 얻어먹기 위해 7㎞를 걸어가기도 했다. 이런 대학생활이 2년여남짓 계속됐다.
하지만 당시 리드칼리지에는 세계 최고의 필기체 강좌가 있었고 그 수강 경험이 매킨토시 컴퓨터 설계의 핵심이 됐다고 잡스는 회고했다. 전 세계인을 매혹한 디자인의 아이팟과 아이폰이 이런 경험의 연장선에 있음은 물론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등록금 문제로 고민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새 학기 등록기간을 앞두고 서울지역 주요 사립대학 상당수가 결국 올해 등록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연초에 정부가 대학들에게 등록금 동결을 요청하면서 서울대와 연세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한국외대, 홍익대, 성신여대 등은 동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고려대는 2.9% 인상을 결정했고 서강대와 한양대는 2.9%, 중앙대도 3% 인상으로 방향을 잡았다.
4.7%인상을 결정한 건국대와 4.9%를 올리기로 한 동국대는 정부가 제시한 3% 마지노선을 훌쩍 넘기는 등록금 인상을 결정하기도 했다.
등록금 인상을 결정한 대학 중 상당수는 지난 1~2년 동안 등록금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누적된 재정적 부담을 쉽게 이겨낼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5일에는 서울 동대문구 다세대 주택에서 서울의 한 사립대 4학년생 A(23.여)씨가 자신의 방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던 A씨는 지난 설 집에 내려가 부모에게 "학사 경고가 나와 한 학기를 더 다녀야겠다. 힘들다"는 말을 했으며, A씨의 집에서는 제적 통지서가 발견됐다.
등록금 인상이 잇따르자 대학생들의 집단 반발도 확산되고 있다. 고려대 올해 등록금이 인문사회계열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12만3천원 인상된 366만9천원, 입학금은 3만원 오른 105만9천원으로 결정되자 학생회 관계자는 "인상안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비상학생총회 등을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명대도 등심위 내에서 협의가 이뤄지지 않다가 학교 측이 최근 3.9% 인상안을 가고지해 학생회가 반발하고 있다.
상명대 학생회 측은 "별도 공고 없이 갑자기 홈페이지에 신입생 등록금 고지서가 나왔고, 학생회가 직접 계산해보니 3.9%를 인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양대도 최근 2.9% 인상된 등록금을 학생에게 고지해 총학생회와 단과대 회장단이 이달 14일 학교측에 동결을 요구하는 항의 방문을 했고, 4.9% 인상을 결정한 동국대에서도 총학생회가 서울캠퍼스 본관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3% 인상이 확정된 동덕여대는 등록금 사용 현황에 대해 공개요청 권한이 있는 감시위원회를 꾸리기로 학생회와 학교 측이 합의했다.
교육전문가들은 대학의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대학생들의 학비걱정을 덜어주려면 장학금 혜택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대학에게 재정의 자율성과 함께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관치의 방식으로 대학의 재정만 옥죄면서 지원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등록금 인상이라는 봇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성우 국민대 총장은 "정부가 공무원들의 급료를 5.1% 인상한다고 했는데 대학들은 수 년째 등록금을 동결했다"며 "현재 대학들은 상당한 재정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등록금의 절대적인 규모는 고려하지 않고 상대적인 인상률만 가지고 대학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접근이 아니냐는 뼈아픈 지적이 이어지기도 했다.
박상규 전국대학교 기획처장협의회 회장(중앙대 기획처장)은 "많은 대학들이 글로벌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찾고 있는데 사립대 대부분은 그 재원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무조건적인 등록금 동결은 대학의 교육역량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고민을 하는 대학생들에게 사회가 내놓을 해법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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