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선칼럼]"그건 니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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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선배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섯 개의 '끈'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얼까, 긍금증이 일었다. '매끈, 불끈(발끈), 화끈, 질끈, 따끈'이라고 한다. 꽤 그럴 듯했다. 나는 어떤가 하고 재미삼아 자문해봤다. 매끈이라, 외모야 타고난 것이니 논외로 하고 성품은 그런대로 사람 꼴은 하고 사는 편이니 일단 통과다. 화끈이라, 가끔은 제법 기분도 낼 줄 아니 이것 역시 중간은 갈 터이다. 따끈? 척지고 사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그리 모질게 살아오진 않았으니 이도 넘어갈 수 있을 듯하다.


헌데 '불끈'과 '질끈'에 이르러 생각이 많아졌다. 불끈은 화를 내야 할 때는 화를 내는, 불의를 보고 참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질끈은 '단단히 졸라매거나 동이는 모양'으로 '눈을 질끈 감다'에서 보듯 남의 잘못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용서할 줄 아는 마음을 뜻한다. 과연 나는 불끈해야 할 때 불끈하고, 질끈해야 할 때 질끈했는가. 부끄럽게도 '아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기자로서 뿐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도 불끈해야 할 때 질끈하고, 질끈해야 할 때 불끈한 적이 수도 없지 않았던가. 후배의 사소한 실수에 '잘 걸렸다'며 불끈했으면서도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에는 혹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지레짐작으로 '잘못됐다'는 말 대신 슬그머니 돌아선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굳이 위안을 찾자면 '용기 없는 못난이'들이 나 말고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많은 평범한 이웃들이 그렇게들, 짐짓 불끈과 질끈이 뭔지 모르는 양 애면글면 살아간다. 왜냐고?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니까. 윗사람에게 불끈했다가 자칫 미움을 받아 쫓겨나기라도 하면 어쩌나.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 그래, 소시민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내로라하는 지도층에도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못난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지도층이 병들면 사회가, 나라가 어찌되겠는가. 속된 말로 '개판'이 될 게 뻔하다.


군 인사가 딱 그 꼬락서니다. 대통령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이가 육군 참모총장이 됐다. 육ㆍ해ㆍ공 3군 참모총장이 모두 영남에 두 명은 대통령과 동향인 포항 출신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합동작전에 큰 허점을 보여 응당 책임을 져야 할 합참 합동작전본부장도 승진했다. 경북 출신이다. 대통령은 "가장 공정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대통령이 눈 '질끈' 감고 제 식구를 챙긴 것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응당 '불끈'하고 나서 '안 된다'고 해야 했다. 그러나 고개조차 들지 않았을 게 빤히 보인다. 5000원짜리 치킨에 불끈할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때 입을 열었어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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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예산안을 강행처리하는 과정에서 나라 살림살이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도 '정의' 운운하는 뻔뻔한 여당, 4대강 반대를 주장하며 예산안 심의는 뒷전이다가 뒤늦게 '형님 예산' 어쩌구하면서 자신들의 '쪽지 예산'에는 함구하는 야당이 다 그렇다. 나어린 자식들을 남들은 몇 십 년을 일해도 오르기 힘든 높은 자리에 '능력' 저쩌구하며 거리낌없이 앉히는 재벌 그룹들, 인명을 살상한 북한의 도발을 애써 모른 체 하는 외눈박이들, 자기 자녀에 인사상 특혜를 주는 공직자들, 스폰서 검사며 전관예우에 능한 판사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교구장더러 고래고래 물러나라면서도 북한 인권에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 사제들, 소소한 비리에는 눈을 부릅뜨면서도 거대 자본의 부조리에는 고개를 돌리는 언론들….


옳고 그름에 눈 감고 입 다물기는 다 마찬가지다. 공정 사회? 개그맨이 한마디한다. "그건 니 생각이고...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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