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하던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중ㆍ고교 시절에도 공부 보다는 게임을 즐겼다. 부모님의 걱정과 우려가 컸지만 게임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학업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꾸지람이 이어졌다.


하지만 소년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것은 부모님의 꾸지람 때문이 아니라 바로 게임 때문이었다. 게임을 즐기다보니 소년은 자신이 직접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신이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게임이라고 믿었던 소년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게임을 만드는데 가장 적합할 것으로 여겨지던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생이 된 청년은 게임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게임에 빠져들수록 대학 공부가 게임을 만드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에게 대학 졸업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바로 게임업계로 뛰어들었다.


어린 나이에 게임 기획을 진두지휘하고 NHN게임스에서 근무하며 유명 게임들을 여럿 만들어낸 게임업계 스타PD 김대일(30) 실장이 바로 주인공이다.


게임업계에서 말하는 'PD'는 영화감독을 떠올리면 된다. 영화 한 편이 탄생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감독이 참여하고 감독의 가치관에 따라 영화가 바뀌듯 게임도 마찬가지다. 김PD는 게임의 탄생부터 소비자와 만나기까지 전과정을 총괄한다.


특히 게임에서 PD는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부터 게임이 가지고 있는 방대한 스토리와 세계관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다. PD가 누구냐에 따라 게임의 특성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김 PD가 만든 게임은 수천, 수만명의 네티즌을 게임의 세계로 초대하는 촉매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사람들을 게임에 푹 빠지게, 즐거움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특히 하나의 콘텐츠로 수만명의 네티즌을 동시에 즐겁게 만드는 것은 분명히 특별한 능력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중학교때 부터는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임이 지금처럼 산업화하기 전부터 그는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자신이 게임에 빠져 즐기다가 어느 순간에 스스로 그같은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그 꿈을 일궈낸 것이다.


김 PD는 이제야 서른에 접어들어 명장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이미 20대의 나이에 국내에서 손꼽히는 게임업체의 실장 타이틀을 달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 PD가 이미 20대 초반에 유명게임들을 잇달아 만들어낼 정도로 장인기질을 타고 났다는 점이다.


김PD가 지금까지 만든 게임은 '릴 온라인'과 'R2' 그리고 최근 상용화에 접어든 'C9'이다. 릴 온라인과 R2는 만들어진 지 4~5년 정도 지난 게임으로 지금은 인기가 다소 시들해졌지만 출시 당시만 해도 인기와 수익성을 동시에 누렸던 걸작들이다. 특히 R2는 상용화 당시 열흘만에 19억원을 벌어들이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연간 200억원 정도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그가 새롭게 만든 C9은 현재 동시 접속자가 약 7만명 수준으로 연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수출까지 포함하면 그 금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김PD가 기획을 주도한 게임들이 연매출 1000억원에 이르는 돈을 거뜬히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김PD가 일단 게임기획에 나서기만 하면 업계와 사용자 모두 큰 기대와 관심을 보이며 주시하게 된다.


업계에서 그에게 '천재'라는 호칭을 붙여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의 생각은 좀 다르다. "천재가 아니라 그만큼 게임을 좋아하고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게임을 기획해야겠다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 게임을 즐기면서 '어떻게 이런 게임을 만들까'라든가 아니면 '이 게임은 어떤 요소가 사람들에게 그토록 재미를 주는 것일까' 등등을 생각하고 고민했다는 얘기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직업으로 이어졌고 또 일에 대한 열정이 무르익어 대작게임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특히 그는 게임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상황에서도 혼자 게임제작에 몰입할 정도로 타고난 열정이 있었다.


"대학 재학 중에는 그림을 못 그리지만 디자인도 하고 프로그래밍도 하면서 게임을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게임을 완성시키지는 못했지만요." 그래서일까. 김PD가 지금까지 만든 게임들은 모두 그가 그동안 즐긴 게임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다른 게임을 모방했다는 뜻은 아니다.


수많은 게임을 즐기고 재미 요소를 찾아내 적용시킨 것이 새로운 게임으로 거듭나게 됐다는 것이다.


"게임을 기획하고 만들 때 다른 게임들을 많이 봅니다. 재미있는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 요소들을 내가 만들 게임에 어떻게 적용시키고 변화를 가해야할 지 등등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난 2000년 게임 'R2'를 시작으로 'C9'까지 만들어낸 그는 이미 차기게임에 대한 구상에 들어갔다. 그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듯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메모하거나 구성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팀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게임에 대한 가닥이 잡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상상 같지만 개발자들이 모여 얘기하는 것이 곧 게임의 재미를 결정하게 됩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 엉뚱한 얘기들을 그냥 쏟아냅니다. 논리적인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도 즐겁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재미있겠다, 게임에 넣어보자' 하게 되는거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과 명성을 얻은 김 PD지만 20대 중반부터 게임 스튜디오 하나를 꾸려가는 팀장의 역할을 하다 보니 어려움도 많이 겪어야 했다. 게임이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다 보니 단순히 게임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것 외에 사람을 관리하는 일도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 처음에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부하직원 중 저보다 어린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이제는 좀 다릅니다. 함께 일한 지 오래되기도 했고, 저도 그 시간을 겪으면서 사람들을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유명 감독들이 배우만큼 인기를 끌 듯 게임업계에서 스타PD는 게임 사용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누가 어떤 게임을 만들었는지가 그 게임의 색을 결정하고 재미를 결정하므로 게임 사용자들은 PD의 이름을 보고 게임을 선택하기도 한다.


김PD 역시 게임업계에서는 그런 존재다. 게임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김PD가 만드는 게임은 '타격감이 좋다'는 평가를 주로 받고 있다. 실감나는 액션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관심의 대상이 되다보니 힘든 점도 있었습니다. 2~3년 전만해도 사용자들 반응을 접할 때 반응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했었습니다. 악플 때문에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고 화도 났지만 지금은 좀 다릅니다. 사용자 반응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보고 게임 사용자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어떻게 고쳐줄까 고민도 합니다."


김PD는 언젠가는 자신만의 게임스튜디오를 차리겠다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이제 30대에 갓 접어든 그가 독립스튜디오를 만들려는 것은 명예나 돈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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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산업의 한계 극복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개발자들이나 스튜디오 자체의 브랜드가 막강합니다. 블리자드만해도 '블리자드에서 만들면 재미있다'라는 인식이 공식처럼 널리 퍼져 있습니다. 개발자, 개발사, 스튜디오 자체가 브랜드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그 브랜드 하나만으로 투자가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게임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해외 경쟁력도 갖출 수 있고요."


새로운 게임을 내놓고 사용자들의 평가를 기다리는 김PD의 바람은 오로지 하나다. 머리가 아프지 않고 즐겁게 다가갈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게임 사용자들이 자신이 만든 게임을 즐기며 "정말 재미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의 희망은 이뤄진 것이다.

함정선 기자 m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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