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의 나무 인간의 꿈을 꾸다<1>

매미와의 불편한 관계

쨍.쨍.쨍. 매미 울음이다. 유난히 길었던 장맛비 뒤에 떨어지는 폭염의 땡볕처럼 여간 귀가 따가운 게 아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매미울음 소리 속에서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와 쇠를 깎는 기계음 소리와 급브레이크를 밟는 차바퀴 소리 같은 것을 연상하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조용한 서울을 만듭시다 조용한 서울을 만듭시다’ 광고 문구가 지나가는 도로소음측정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릴 땐 막히는 도로에서 매미들도 질주하는 차들을 따라 클렉션을 마구 울려대는 게 아닌가 하는 공연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매미가 클렉션을 울려대다니?


매미와의 불편한 관계를 더듬어보니 한때는 우리 사이에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매미울음 소리는 자갈돌을 휘감고 가는 여울물 소리였고, 접었던 쥘부채를 좍 펴는 소리였고, 모시옷 속을 드나드는 바람 소리 같은 것이었다. 모시날개를 걸친 채 쥘부채를 들고 창을 하는 소리꾼이 떠오르지 않는가. 가만히 귀를 맡기고 있으면 왼쪽 어깨에선 강물이 출렁이고, 오른쪽 어깨에선 꽃 지는 산그늘이 흔들리고, 풀잎 위로 뛰어오르는 메뚜기 뒷다리처럼 손바닥엔 절로 장단이 일었다. 여울물처럼 시원시원한 가락이 실린 구성진 창을 따라하던 그때 아마도 나는 썩 괜찮은 귀명창이었나 보다.

그때 나는 나무 아래 누워 있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대로 눈을 맡겨놓고 나뭇잎 옆에 돋아난 하늘을 더듬고 있었다. 어쩌면 저 나뭇잎이 다 진 뒤에는 하늘이 나무의 나뭇잎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늘이야말로 나뭇가지를 옆맥 삼아 돋아나는 나뭇잎이 아닐까. 거침없는 몽상이 출렁이던 그때 모세혈관처럼 뻗어간 나무가 하늘을 끌어안듯 내게도 하늘이 잠시 들어와 앉은 것 같았다. 음악이 울리기 위해선 빈 공간이 필요한데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온 하늘이 내게는 노래가 번져나가는 여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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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마리 매미가 되어 나무와 숲을 찾아다녔다


지난여름 휴가 기간 동안 나는 한 마리 매미가 되어 나무와 숲을 찾아다녔다. 매미와 나 사이에, 세상과 나 사이에, 아니 어쩌면 오래 전에 놓쳐버린 나와 나 사이에 그와 같은 푸르른 여백이 들어와 살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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