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 하는 대기업 통신업체에서 20여 년간 몸 담아왔던 최 모씨(53)는 1년 전 회사 구조조정에 따라 자회사로 옮겼다. 업무내용이나 전공과도 먼 단순 노무직과 같은 일이었지만 자식 생각에 묵묵히 일해왔다.그러다 지난 5월 회사측의 구조조정 압박이 심해지자 반강제로 퇴직해야 했다. 최씨는 "두어달 쉬니 생활이 어려워졌다"면서 "지난 달부터 고용지원센터에 실업급여도 신청하고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나이가 많아 쉽지 않다"고 한숨쉬었다.
#.신문방송학 전공인 박 모씨(28)는 2년째 4학년이다. 방송사 PD가 되겠다는 꿈은 접은지 오래다. 지난해에는 경영학 부전공까지 신청해 학점을 메우느라 혼줄이 났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박군은 "요즘 대학 도서관은 '취업준비관'으로 변했다. 어디든 취업하는 게 최고의 효도"라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최씨와 박씨는 기업체감경기가 크게 호전되는 등 경기회복 전망이 밝아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고용사정 악화로 고통을 받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하반기에도 고용ㆍ노동시장 불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고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거꾸로'가는 노동ㆍ고용지표
제조업체들의 체감경기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한국은행이 2382개 제조업체를 조사해 27일 발표한 8월의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달보다 5포인트 높은 86을 기록했다. 지난 해 4월(87)이후 16개월 만의 최고치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업종별 매출액순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9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117.0으로 나타났다.BSI 전망치가 110을 넘어선 것은 주가가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던 지난 2007년 11월 이후 1년10개월 만이다.
기업들이 전망을 밝게 보는 것은 실물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는데다 기업 경영 실적 호전과 불확실성 축소, 소비 심리 개선 기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전경련은 분석했다.
그러나 전망이 투자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7월 취업자는 2382만8000명으로 7만6000명 줄었다.실업자는 92만8000명으로 지난 해 7월보다 무려 15만9000명이나 불어났다.이에 따라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도 급증했다.올들어 24일까지 실업급여 수급자수는 100만2809명으로 지난 1996년 실업급여를 지급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노동부는 신규실업급여 신청자 수가 차츰 감소하고 있어 향후 수급자 증가세가 진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비정규직이 늘고 있는데다 정부의 단기 일자리 대책 종료 등으로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3개월에서 길게는 8개월로 일정기간 누적될 수 밖에 없어 연말이 되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실업급여 수급자수는 130~40만 이상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용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 노동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7208개를 대상으로 '사업체임금근로시간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총액은 전년 동기보다 4.3% 하락한 반면, 주당 총근로시간은 0.5시간 늘었다.매주 5일 내내 일하는 것이 불가능해 사실상 휴직에 가까운 사람들로 구분되는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 수도 지난달 105만7000명으로 통계작성 이레 7월 기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연말 갈수록 서민생활 어려워질 것"
전문가들은 고용시장은 경기후행 측면이 강해 연말이 다가올수록 더욱 나빠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아직 경기회복을 확신하지 않고 있어 신규채용이나 고용유지 측면에서 좀 더 두고 보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방하남 연구위원은 "거시경제 지표가 일자리 문제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비정규직 문제 등이 어떻게 해결되느냐가 숙제로 남아있다"면서 "이들이 후행지표로 반영되면 내년 초 경기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노동시장은 내년 말쯤 돼야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희망근로프로젝트 등 정부의 공공재정 지출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를 하반기에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면서 "서민들은 이미 삶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어 체감정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연말이 다가 올수록 더 힘들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문석 LG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경기가 안 좋고 고용사정이 나쁠 때 사회 안정망에서 충격을 흡수해 줘야 하는데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투자와 고용의 선순환이 일어나기 전까지 정부가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대책마련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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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기자 hjlee3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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