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L";$title="유시춘";$txt="";$size="150,212,0";$no="200908181424010092234A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DJ는 뼛속 깊은 자유주의자며 의회민주주의자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괴로웠던 게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좌경용공세력의 우두머리’라는 것과 ‘지역주의를 조장한 장본인’이라는 왜곡된 평가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 직접 참여했던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기자와 통화해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왜곡으로 평생을 괴로워했다며 회고했다. 유 전 위원은 “김 전 대통령은 오히려 뼛속 깊은 자유주의자의며 의회민주주의 신봉자였다”고 말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대결이 있을 때도 정치인들의 장외투쟁을 매우 싫어했다. 평소 원칙을 중시했으며 평생 5번의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적대 세력들과도 대화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금과옥조로 여겼던 장본인이라고 평했다.
오히려 당시 군사독제 세력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평생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주의’조장한 장본인이라는 왜곡된 이미지도 김 전 대통령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유 전 위원은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하도 ‘영호남의 갈등, 지역주의 조장’이런 말들을 많이 하니까. 디제이가 직접 ‘우리 민족이 뛰어나다보니 악마가 시기질투해서 그런 가 보다’며 악마의 덫이라는 표현까지 썼다”고 말했다.
햇볕정책도 대립과 반목보다는 대화를 통한 존중과 평화를 내세웠던 김 전대통령의 철학에서 나온 정책이라고 유 전 위원은 평했다. 그는 “디제이(DJ)는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죽의 장막이라고 불렸던 중국을 직접 방문해 냉전관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던 점을 크게 높이 평가할 정도 적대세력과 대화를 중요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은 대화의 힘을 믿었고,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지만 ‘유신 때 차지철 경호실장이 번번이 박 전 대통령과의 대면 일정을 잘라 버렸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또한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법정에서도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정치보복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할 정도 대화와 화합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햇볕정책은 이러한 김 전 대통령의 평화추구 철악이 반영됐으며 이를 높게 평가되어 결국 노벨평화상도 받게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디제이가 평소 즐겨 썼던 휘호가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며 ‘국민 섬김을 하늘과 같이 하라’는 게 평소 좌우명이었다”고 밝혔다.
1년 반 만에 IMF외환위기를 극복했던 것에 대해 “당시 디제이는 조기졸업을 위해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며 “당선자 시절부터 비상경제대책위원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경제위기극복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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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해외투기자본이었던 조지 소로스 퀀텀 펀드 회장과도 직접 만나는가 하면, 미국에 특자를 보내 매일 같이 유선을 통해 보고를 받았다는 것. 대기업간의 빅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룹 회장들을 불러다 놓고 “IMF외환위기는 국가와 기업경영자가 실수한 것인데, 정작 고통은 서민들이 받고 있다”며 안타까워하며 구조조정을 독려했다고 회상했다.
한편 유 전 위원은 김 전 대통령이 2004년부터 쓰기 시작한 총 2권의 자서전 가운데 하 권의 구술작업에 참여했으며 자서전은 올해 안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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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기자 bobo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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