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머슴으로 스스로 자리매김 …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고 차분히 합의 도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벤 버냉키(55) 의장이 진정한 공복(公僕)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9일(현지시간)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버냉키 의장이 FRB에 혁명을 몰고 왔다고 평가했다.

현재 FRB는 버냉키 의장 아래 80년래 최악의 경기침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조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사실 버냉키 의장은 혁명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에게 카리스마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노련한 경제학자일 뿐이다.

지난 18개월 동안 버냉키 의장은 육중한 조직인 FRB에 변혁을 불러일으키며 과거 잘 활용되지 않았던 긴급권도 발동해왔다. 그 결과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투자 전문지 그랜츠 인터레스트 레이트 옵서버의 제임스 그랜트 편집인은 경기침체로부터 일단 벗어나면 "버냉키 의장의 물량 공세 탓에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버냉키 의장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가 거창한 연설이나 강압 없이 조용히 일하는 성격이라고 전했다.

앨런 블라인더 전 FRB 부의장은 "책상을 쾅쾅 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은 버냉키 의장의 타입이 아니다"라며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전문 지식으로 차분히 합의를 도출하는 게 그의 타입"이라고 평했다.

◆틀에서 벗어난 생각=버냉키 의장은 "관계자들에게 틀에서 좀 벗어난 아이디어를 요구한다"며 "이것이 FRB의 전통적인 접근법은 아니지만 현 상황에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프로그램의 집행 방법을 고안하는 데 부하 직원 수십 명이 동원된다. 그러나 촉매 역할은 버냉키 의장의 몫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윌리엄 더들리 총재는 "그렇게 해서 전통적인 금융정책 수단이 이번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충분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견 존중=지난해 11월 버냉키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과 일일이 만나 모기지 시장 개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위원들의 생각은 각자 달랐다. 하지만 대다수가 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며 FRB에서 모기지 부채를 매입할 경우 문제 해결에 한몫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버냉키 의장은 결국 합의를 도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리치먼드 연은의 제프리 래커 총재는 "지도자 가운데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의견에 대해 논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며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자신과 다른 견해라도 진지하게 고려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여=FRB의 독특한 구조상 유동성 공급과 관련된 긴급 조치 같은 것은 FOMC 전체 회의에서 결정한다.

버냉키 의장은 FRB의 의사결정 과정에 공식 발언권이 없는 직원이라도 필요하다면 참석시키겠다고 말했다.

캔자스시티 연은의 토머스 호닉 총재는 "버냉키 의장이 가능한 한 여러 의견을 청취하려 애쓴다"며 "그는 다양한 의견을 기꺼이 듣고 책임 있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은 먹혀 들었다. 일례로 댈러스 연은의 리처드 피셔 총재는 지난해 12월 FOMC에서 금리 인하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해 반대했다. 하지만 막판에 금리 인하 쪽으로 대세가 기울자 합의라는 정신 아래 찬성 쪽에 표를 던졌다.

◆"관료주의는 가라!"=버냉키는 3년 전 FRB 의장에 취임한 이래 관료주의 문화를 탈색시키기 위해 애써왔다. 요즘 FRB의 고위 임원들은 연준 총재를 호칭할 때 이름만 부른다.

버냉키 의장은 회의에서 논의를 중시해 지위가 낮은 직원이라도 특정 문제의 전문가라면 논의에 참여시킨다.

10년 전 FRB가 국채 발행과 관련해 기술적 문제에 대해 논의할 당시 18개월 동안 이코노미스트 73명이 매달려 165쪽의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리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라도 1주만에 결론 내린다.

버냉키 의장 자신이 신속한 행동을 촉구하고 나서기 때문이다.

◆정치적 감각=버냉키 의장과 일해본 이들은 그가 정치적 감각을 좀 익혀 의회 입맛에 맞추기도 한다고 전했다.

버냉키 의장은 언론 활용법도 터득했다. 그는 CBS 방송의 시사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금융위기 문제 해결에서 가장 큰 문제로 '정치적 의지의 결여'를 꼽았다.

댈러스 연준의 피셔 총재는 "당시 인터뷰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고 평했다. 미 국민들에게 경제 회복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버냉키 자신이 사려 깊고 신중한 인물임을 알리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