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최종 타결이 무산됐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관세환급과 일부 원산지 표기 문제를 두고 2일 오후 런던에서 양측은 통상장관회담을 벌였으나 결국 관세환급이 한-EU FTA 타결의 발목을 잡았다.

이 문제는 어느 쪽도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전문가들은 한 EU FTA가 최종 결렬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관세환급 결국 딜브레이커

딜브레이커(협상결렬요인)가 된 관세환급에 대해 우리측은 폐지시엔 FTA체결에 따른 이익이 훼손된다는 입장이며, EU측은 이중혜택으로 인정하기 곤란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관세환급은 가공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로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또한 WTO체제하에서 인정되는 수출 촉진책으로 우리나라는 1974년부터 4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는 제도다.

관세환급이란 중국 등으로부터 원자재를 수입, 가공해 수출하는 국내 기업에게 원자재를 들여올 때 매겼던 수입관세를 돌려주는 것이다.

EU측은 FTA로 관세 철폐와 함께 관세 환급까지 해줄 경우 이는 이중혜택이고, 이 과정에서 제 3국으로 혜택이 돌아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EU는 FTA를 체결한 국가들에게 관세환급을 허용한 전례가 없어 '원칙의 문제'라는 것. 특히 한국에게만 허용해줄 경우 합당한 논리를 찾아 27개 회원국들을 일일히 설득해야 해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U는 유럽내에서 제조 전과정에 필요한 원자재 등을 조달할 수 있어 칠레, 멕시코 등과의 FTA 체결에서 관세 환급 금지를 관철시킨 바 있다.

하지만 입장차가 큰 양측이 관세환급을 두고 10년, 20년 등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이 도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수차례 "관세환급은 중국, 일본 등이 유지하는 상황에 우리가 FTA 댓가로 관세환급 금지를 받아들일 경우 FTA에 따른 혜택이 훼손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혜민 FTA수석대표 역시 지난달 말 런던으로 출국하기 전 "관세환급에 대해 EU측에서 한시적으로 100년을 허용한다고 해도 관심이 없다"며 "관세환급은 무조건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측 정치적 온도차 표류하나

관세환급이 한 EU FTA의 발목을 잡았지만 원산지 기준은 어느정도 의견절충을 이뤘다. 양측은 기계, 전기전자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산업에서 역외 부품 및 재료 사용 비율이 높은만큼 역외산 부품사용 비율을 품목별로 45~50%사이에서 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차기 회담일정도 합의되지 않은 채 한 EU 통상장관회담이 매듭지어지면서 한-EU FTA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보인다.

EU내의 정치적 상황도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다. EU의장국인 체코 내각이 최근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구권 국가들이 경제위기 상황에 FTA 등 개방을 반대해 온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관세환급에 가장 민감한 자동차 산업이 EU의 중추 산업인 데다 독일, 프랑스 등 핵심 회원국이 자동차 강국이라는 점은 캐서린 애슈턴 집행위원 등 EU 측 교섭 당국자들에게 큰 부담이 됐다.

외교통상부 고위관계자는 "애슈턴 통상담당 EU 집행위원이 '소프트하다'는 국내 언론 보도 등도 애슈턴 위원이 EU 회원국들을 설득하는 데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타결' 등 우리 정부가 먼저 한 EU FTA의 타결을 성급히 결론 내린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최종 결렬 가능성 희박

양측은 아직 향후 회담일정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150여분만에 통상장관회담을 마쳤지만 한-EU FTA가 최종 결렬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리로서는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 세계 최대시장인 EU 27개국과 동시에 FTA를 맺어 수출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고, EU 역시 한국을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다. 특히 EU측이 한미 FTA 추진을 계기로 우리나라와 FTA 협상을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EU측도 한국은 놓치기 어려운 시장이다.

또 양자협상인 FTA는 먼저 발효될 수록 양측이 얻을 수 있는 선점효과가 크기 때문에 한-EU FTA가 한미 FTA보다 먼저 발효될 경우 EU로서도 한국시장내에서 미국을 앞서는 경쟁력을 갖게 된다.

김종훈 본부장도 2일(현지시간) 통상장관회담 직후 "협상 결렬이라기보다 EU 내부적으로 대두된 어려운 문제들을 넘어서는 단계"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차기 회담을 위한 구체적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협상을 속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늦어도 5월안에는 회담이 다시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차기 회담에서 FTA협상이 최종 타결된다면 내년 초 한-EU FTA가 발효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김재은 기자 alad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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