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별이 가벼워졌다. 그런 노래가 생각난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중략)...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별을 치루는 형식도 새털 같다.
"선배. 토요일 오후 다섯시경 송현리로 건너 오세요"
봄이 아빠다. 이웃 마을에 살면서도 참 오랜만이다. 그는 잣나무골에서 삼년을 함께 살다가 여주 산북면으로 이태전에 이사했다. 여주래야 우리 집과는 십여리도 안 된다.
송현리는 나도 옮겨 가려고 했던 곳이다. 집을 팔아 새로 집 짓는 것이 비용이 더 들어 포기했었다.
한동안 봄이네와는 동호인주택을 지어 함께 살 생각에 가슴이 부푼 적이 있다.
그가 모임을 주선한 것은 필리핀으로 떠나는 다해네를 송별하기 위해서였다. 다해네는 일년간 마닐라 인근에서 아이들 어학연수 겸 유학을 할 계획이다. 이달말 떠난다.
봄이네와 다해네는 하나의 대지 위에 집을 나란히 짓고 산다. 마당과 텃밭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이 조성한 전원주택단지안에는 다른 세가구가 더 있다. 아침 일찍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모임이 시작될 시간. 아내도 장모님과 온천을 막 다녀올 즈음이었다.
봄이네, 다해네, 그들 이웃과 어울리는 날이면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가져가지만 오늘은 아무런 준비도 못 했다. 아내는 온천에 다녀오면서 훈제 통닭 두마리를 사왔다. 모임에 가져갈 음식이다. 집에서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면 더 좋을텐데...하면서도 나도 아내도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 했다.
문득 이별할 때는 특별히 먹는 음식이 있는 것인지 기억을 들춰봤다. 굳이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떡으로 치면 절기나 잔치마다 내놓는 것들이 다 다르다. 그런데도 이별의 격식에 맞는 음식은 떠오르는 것이 없다. 참 내 !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시장에서 사온 닭으로 이별을 치루려니 여간 민망치 않다. 이웃들과의 격식 없는 자리라지만. 특히 음식 솜씨가 뛰어난 봄이엄마는 항상 색다른 음식을 내놓아 부담을 준다.
봄이네 마당에 들어서자 그제서야 이웃들도 모여들기 시작한다. 지난 여름 이후 건너온 적이 없었더니 새 이웃이 보였다. 봄이네와 다해네는 여름이 되기전에 이웃 친구를 잃었다. 함께 집을 지은 친구였다. 내가 지을 지으려고 했던 자리에 들어와 살던 이다. 그는 어느날 새벽 평소 아무런 징후도 없다가 조용히 숨을 거뒀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아내는 전세를 주고 서울로 떠났다.
새 이웃은 같은 또래의 인테리어 업자다. 그리고 송이네를 더해 다섯 가족이 어울렸다. 인테리업자는 쭈꾸미 샤브샤브를, 봄이네는 해초 무침과 두부 조림을 마련했다. 주인공인 다해네는 봉추닭찜을 내놓았다. 아뿔사 ! 우리 메뉴와 겹치네. 더욱이 시장에서 사온 훈제 닭과는 비교된다.
그리고 집에 담근 매실주와 포도주, 맥주, 소주도 놓여졌다. 봄이네 잔디밭은 금새 잔치마당으로 변했다. 모두들 무사히 또 한겨울을 났다는 안도같은 것이 배어났다.
"형 ! 엊그제 새벽 개구리 소리 들었어요"
봄이네가 묻는다.
"그래 참 요란스럽더만"
첫번째 화제는 개구리소리였다. 마침 다들 엊그제 새벽 놀랍도록 아우성치는 개구리소리를 들어서였을거다.
그날은 아주 적게나마 비가 뿌렸고 그새 동면에서 깬 개구리들은 힘차게 암컷을 불렀다.(벗들. 새벽 들판 걸을 때는 가만히 걸어라. 사랑에 빠진 개구리들이 놀라지 않게. 그들이 안심하고 새 생명을 키우게...아주 가만가만 걸어라)
첫 개구리소리는 생동감이 넘쳐 모두들 기억에 박힐 정도였던 모양이다.
개구리가 일찍 깨어나 우렁차게 울음을 터뜨렸다는 첫 화제가 끝나고 나서야 이별을 위한 격식들이 진행됐다. 다해네가 간단하게 떠나는 이유를 밝혔다.
"언제 떠나보나. 지금이 아니고서는. 그곳에서 한달 비용이 230만원 드는데.여기 생활비와 같은 수준이라서.애들 상급학교 가기전에 체험삼아..."
다해 엄마는 이런 여행과 관련, 아주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두딸과 제주도에서 반년을 지내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떠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는 농가를 빌려 살았다. 참 용감하기도 하지.
"이번에 뽀삐도 죽어서, 떠나는데 발목 잡는 것도 없어 좀 홀가분하네.항상 거처를 옮길 때마다 큰 걱정이었는데."
뽀삐는 지난 겨울 수명을 다한 다해네 개다. 다해네가 제주도로 떠나고서는 봄이네에 반년동안 맡겨졌었다. 거처를 자유롭게 옮기는 편인 다해네를 생각하면 의외의 답변이다. 예전엔 제주도로, 이번엔 필리핀으로...그 전에는 중국에서 반년을 보낸 적이 있다. 이번엔 일년이다. 아직도 세상 경험을 즐기고 영혼이 자유로운 다해 엄마에게 뽀삐의 죽음은 그녀를 더욱 자유롭게 한 모양이다.
나는 언젠가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다.
"떠나는게 쉬운 건가요 ? 왜 나는 어디 떠나볼 생각을 하지 않은 거죠 ?"
그녀가 대답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용기를 낸다든지, 결단을 내린다든지 할 문제다. 결국 답은 내게 있다. 다해네가 내놓은 봉추닭찜이 달콤했다. 나는 당면속에서 건진 닭다리를 뜯으면서 좀 매웠으면 좋을텐데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내놓은 단 맛의 찜닭이라니....사실 이별이 습관같은 생활이라 그 때마다 먹은 음식들은 아무런 기억이 없다.
그녀는 내게 답했었다.
"떠나고 싶은 곳은 있나요 ? 떠날 곳은요 ? 왜요 ? 그것을 먼저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 나는 구체적으로 떠날 곳도 이유도 정한 바 없다.
"떠나고 싶어지면 그 때 바로 떠나면 돼요."
다른 친구가 덧붙였었다.
"떠나는 건 돌아오려고 떠나는 거죠."
다해 아빠는 신문사 기자로 그 또한 유별난 영혼의 소유자다. 그는 국선도에 심취, 아주 높은 단계의 수련을 마쳤다. 지금도 주말이면 자주 지리산에 들어가 수련을 하곤 한다. 나는 국선도가 관념적인 느낌이 들어 아예 접하지도 않았다.아니다. 접하기는 했다. 언젠가 다해아빠가 우리 집에 와서 몇시간동안 기본 자세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그것으로 국선도와의 인연은 끝났다.
그들은 가족의 헤어짐도 참 가벼워 보인다. 나는 지금껏 가족과 나뉘어 생활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여전히 색다른 체험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녀의 얘기가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송현리 멤버인 인테리어업자는 '쭈꾸미' 요리를 만들어냈다. 아주 능숙한 솜씨다.
그는 "우리 부부는 요리 만드는게 취미"라며 "아내도 음식을 잘 만든다"고 자랑했다. (음식에 관한한 나도 일가견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쭈꾸미 소스도 유별나다. 왠지 마니아수준의 솜씨가 엿보인다.
나는 그날 지칠만큼 술을 마셨다.이미 점심 무렵부터 술을 마셔온 탓에 일찍 취하고 힘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잣나무골 외의 세상을 구경시켜준 적이 없다.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서 스스로 겪어 나가라"고. 그런데 그게 합당한 일인가. 다해네는 여기저기 떠난다. 그러나 나는 머문다. 떠남과 머무름. 나는 내내 질문을 던졌다.발목을 잡는 개도 없는 처지에 어딘들 가지 못 하랴.
나는 이웃들속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도 부르고, 자작시도 읊었다. 그리고 더 깊이 취했다. 취해도 누가 말리는 사람도 없다. 나는 오랫동안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꿈꿔왔다. 그러나 여전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여행을 생각해봐야할까. 잣나무골에서 머문 13년, 내가 여기를 떠나는 날 친구들은 어떤 음식을 마련해줄까. 나는 그들에게 단 맛의 음식을 만들어 줄까.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상장 첫날 70% 폭등 "엔비디아 독주 끝나나"…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