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CEO, 그 성공의 조건] 인드라 누이 펩시 회장
실용정신·창의성 '두각'.. KFC 등 당장 수익내도 비전없으면 매각
기업 전략가로 '성공'.. 모토로라 등 다국적社 섭렵.. GE도 러브콜
세계적 CEO로 '우뚝'.. 글로벌 영향력 여성 3위.. 인도계 '큰 누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23세의 인드라 누이는 고민에 빠졌다.
1978년 미국 예일 대학원의 인도 출신 유학생이었던 누이는 대학원 추천으로 한 유명 기업 면접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누이는 전액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했다. 하지만 생활비는 야간 아르바이트로 벌어야 했다.
초청장을 발송한 업체에 견습사원으로만 들어가도 최저 수당이 야간 아르바이트 수입의 몇 배가 넘는다.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드문, 절대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문제는 비즈니스 면접 대부분이 정장 차림으로 고위 임원들 앞에 서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누이에게는 입고 갈 정장이 없었다. 정장을 살 돈도 없었다.
고민 끝에 누이는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 차림으로 면접을 보기로 했다. 스스로 가장 인도인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단 내린 것이다. 누이의 실용적인 결정에 대해 높이 평가한 면접관들은 그를 채용했다.
누이는 당시 상황에 대해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며 "하지만 그해 여름 내내 사리를 입고 일해야 했다"고 떠올렸다.
◆'끼' 많은 소녀=누이는 인도에서 가장 높은 사회계급인 브라만의 중류층 가정 출신이다. 1955년생인 누이는 지방판사였던 할아버지와 은행가였던 아버지의 가부장적ㆍ보수적인 교육환경 속에서 자랐다.
누이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사람과 함께 호흡할 줄 아는 재능 및 끼가 있었다. 여성의 활동이 크게 제약 받던 분위기에서도 그는 여성 크리켓팀 선수로 뛰었다. 캘커타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록밴드의 여성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인도의 경영대학원이라고는 2곳밖에 없던 시절 그는 경영학석사(MBA) 학위 과정을 마쳤다. 이어 방직회사를 거쳐 존슨앤존슨(J&J)에서 일했다. 당시 인도는 위생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로 J&J의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은 일반인에게 매우 생소했다. 훗날 누이는 당시의 마케팅 경험이 큰 힘으로 작용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더 많은 경영지식을 쌓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부모님은 누이가 보수적인 인도에서 그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누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기업 전략가로 성공 가도 달리다=보스턴컨설팅에서 6년, 모토로라에서 5년, 글로벌 기계 제조업체 ABB에서 4년 동안 기업 전략가로 근무한 누이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이를 정중히 거절한 그는 1994년부터 펩시에서 임원직인 수석 전략가로 일하게 됐다. 당시 펩시는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직된 조직의 유연화와 구조조정이 절실한 시기였다. 누이의 창의성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는 펩시가 보유한 외식 사업부를 매각해 KFCㆍ피자헛ㆍ타코벨로 독립시켰다. 1999년에는 펩시 기업공개(IPO)로 23억달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펩시는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음료업체 트로피카나를 33억달러에, 시리얼 제조업체 퀘이커오츠를 140억달러에 사들였다. 더 싼 값으로 사들일 수 있다고 방심했던 경쟁업체 코카콜라는 퀘이커오츠를 놓친 뒤 땅만 칠 수밖에 없었다.
◆코카콜라의 아성을 넘어서다=펩시는 이처럼 수익성 떨어지는 사업부를 매각하고 성장성 높은 사업부를 사들이는 식으로 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있었다.
종합식품업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펩시는 2001년 순이익률이 13%에 이르렀다. 2006년에는 매출ㆍ순이익ㆍ시가총액에서 최대 라이벌이자 업계 1위인 코카콜라를 넘어섰다. 코카콜라가 탄산음료 사업에 연연하는 동안 펩시는 종합식품회사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펩시의 성공 배후에는 누이가 있었다. 그는 2000년 최고재무책임자(CFO)에, 2001년 사장에 올라 수년 사이 스티븐 레인먼드 회장 다음의 2인자로 자리를 굳혔다. 2003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글로벌 비즈니스계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누이를 선정했다. 그녀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3위=누이는 2007년 2월 레인먼드 회장의 뒤를 이어 펩시 회장에 등극했다.
여성으로, 그것도 맨손에서 시작해 불합리한 인습과 편견을 깨고 세계 굴지 기업의 총수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이는 세계 여성계에 큰 경사이기도 했다.
누이의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든 남들보다 열심히 하라"고 딸에게 가르쳤다. 아버지의 이런 당부를 명심한 가운데 미국으로 건너간 지 30년만에 이룬 성공은 인도인들에게도 엄청난 뉴스가 됐다.
누이는 지난해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 중 3위에 올랐다. 현재 미국 500대 기업에서 여성이 대표이사ㆍ회장을 맡고 있는 곳은 12곳에 불과하다.
대외 행사에 여전히 사리 차림으로 즐겨 나서고 누구 앞에서든 스스럼없이 전자 기타를 연주해보이는 누이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글로벌 시대의 여성 CEO상일 듯하다.
노종빈 기자 untie@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상장 첫날 70% 폭등 "엔비디아 독주 끝나나"…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