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상실 통해 느슨한 관계의 가치 조명
서서히 끊기고 조용히 폐쇄되는 중요한 것들
야구영화의 문법은 대개 단순하다. 승패가 서사를 끌고 가는 가운데 주인공이 시련을 넘어 성장한다. 미국 독립영화 '마지막 야구 경기'는 이 익숙한 틀에서 크게 벗어난다.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를 책임지는 주인공도 없다. 플롯을 뒤집는 사건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동네 야구장에 모인 중년 남성들이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풍경만 담긴다. 누가 이기느냐보다, 왜 이 경기를 끝내려 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배경이 되는 야구장은 철거될 공간이다. 다른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겉보기엔 낡은 운동장 하나가 없어지는 일이다. 영화는 그 너머를 본다. 그곳에서 함께 늙어가던 사람들의 시간, 반복 속에서 유지되던 관계,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였지만 삶을 붙들어주던 습관이 모두 사라져간다.
현대 사회는 생산성을 기준으로 공간을 재편한다. 수익이 나지 않는 시설을 다른 용도로 전환한다. 이런 변화를 나쁘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쉽게 버려진다는 데 있다. 동네 야구장은 매출을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주 친구를 만나는 장소고, 집과 직장 바깥에서 자신을 회복하는 공간이다. 이 영화는 그 비가시적 가치에 주목한다.
이들이 지키려는 것은 야구장이 아니다. 그것을 매개로 가능했던 삶의 방식이다. 거창한 목적의식은 없다. 그저 주말마다 모여서 경기하고, 별것 아닌 농담을 던지며 시간을 보낸다.
현대 사회는 이런 느슨한 관계를 무의미하게 취급한다. 명확한 목적과 생산성, 성과가 모두 없어서다. 하지만 인간은 뚜렷한 관계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느슨한 연결망 속에서 버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영화가 다루는 상실은 야구가 아니다. 함께 늙어갈 장소, 경쟁사회 바깥의 작은 피난처를 잃는 것이다.
카슨 룬드 감독은 이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더그아웃에서 맥주 캔을 비우며 나누는 대화, 무릎을 주물러야 하는 나이 든 선수들, 별 의미 없는 판정을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 이미 해가 졌는데도 끝내기 싫어 이어가는 경기. 이 모든 것은 프로 스포츠의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대신 실제 동네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공감할 장면들이다.
원제인 '이퓨스(Eephus)'는 야구에서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아주 느린 볼을 뜻한다. 창시자는 1940년대에 피츠버그에서 투수로 뛴 립 서웰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이 공을 본 외야수 모리스 밴 로베이스가 '이퓨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이페스(efes)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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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야구는 속도보다 타이밍의 경기다. 빠른 공이 위력적이지만, 느린 공 역시 타자의 리듬을 무너뜨린다. 영화 속 상실도 마찬가지다. 삶의 중요한 것들은 대개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모임은 서서히 끊기고, 사람들은 하나둘 늙어가며, 공간은 어느 날 조용하게 폐쇄된다. 빠르게 꽂히는 직구처럼 찾아오는 비극보다, 천천히 떠오르다 어느 순간 떨어지는 공에 더 크게 무너질 때가 있다.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한 번쯤 날아오는 그 느린 궤적을, 끝내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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