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걸린 것은 현판만이 아니다[현판 논쟁]
"가상 모형" vs "역사 왜곡"…해석의 충돌
한글이냐 한자냐 전에 '원형' 둘러싼 두 시각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인부들이 현판을 점검하고 있다. 광화문 현판은 지난 여름 색상 과학적 분석 연구를 위해 실물 크기 실험용 현판 촬영 작업을 진행 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와 최종덕 전 국립문화유산연구소장은 주제발표에서 첨예하게 맞섰다. 이 대표는 노트르담 성당, 루브르 박물관, 파리 팡테옹 등 해외 사례를 동원해 원형과 현대성의 공존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주장했다. 최 전 소장은 광화문 일대가 권력의 상징 조작 무대가 됐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현판을 시류에 따라 바꾸는 것은 역사 왜곡이라고 맞받았다.
"원형 고집은 독단…국가 정체성의 차원으로 봐야"
이 대표는 현재 광화문 한자 현판의 원형 자체가 취약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현판의 원형은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였다. 그러나 2010년 복원은 희미한 사진을 디지털로 되살려 진행됐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였다. 현판은 2018년 일본에서 발견된 '경복궁 영건일기'를 통해 검은 바탕·금박 글씨였음이 밝혀져 2023년 다시 교체됐다. 이 대표는 "당시 배색을 바꿀 때도 글꼴은 2010년의 것을 그대로 썼다"며 "이 정도면 사실상 가상 모형인데, 원형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독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판과 비슷한 사례로 노트르담 성당 첨탑을 가리켰다. 2019년 화재 뒤 복구 방향을 두고 최후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자는 안과 현대적 감각으로 재설계하자는 안이 충돌해서다. 이 대표는 원형 복원으로 결론이 났지만, 정작 첨탑 자체는 19세기에 새로 설계됐다는 역설을 짚었다. 중세 첨탑은 18세기 말에 철거됐다. 1857년 제안된 새 첨탑은 건축가 비올레르뒤크가 기존 기록을 참고해 새로 디자인한 것이었다. 이 대표는 "원형의 기준을 어느 시점에 두느냐는 결국 그 사회의 판단"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질적인 가치의 공존 사례로 루브르 박물관과 팡테옹, 로마 카라칼라 대욕장도 거론했다. 루브르 앞에 들어선 높이 21.6m의 유리 피라미드는 격렬한 반대에도 1989년 완공돼 루브르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 파리 팡테옹은 원래 교회였으나 프랑스 대혁명을 거쳐 공화국 위인들의 묘소로 바뀌었다. 돔의 십자가와 정면부 공화국의 비문이 지금도 한 건물 안에서 공존한다. 카라칼라 대욕장은 폐허의 벽면을 반사판으로 삼아 오페라 극장으로 사용된다.
광화문의 역사도 같은 맥락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경복궁과 광화문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돼 270년 넘게 폐허로 있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의 중건으로 다시 건립된 것 자체가 당대의 시대정신을 건축으로 구현한 창조적 복원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금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일도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의 법적·역사적 위상도 짚었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문은 "우리말을 국어로 하고 우리글을 한글로 하는 것"을 국가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 사항으로 명시한다. 갑오개혁 당시 공식 나라글자 확정, 1948년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 제정, 2005년 국어기본법 등도 법적 토대를 이루기에 충분하다. 역사적으로는 독립신문 창간, 조선어학회의 한글 운동, 문맹 퇴치 계몽 운동 등 정치권력과 무관하게 국민이 주도한 문자혁명을 한글의 뿌리로 볼 수 있다.
지난달 1일 광화문 앞에서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국민모임 주최로 열린 '3.1절 맞이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설치 범국민 출범식'에서 예시현판 모형이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이 대표는 "한글은 문화나 도덕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사항"이라며 "국가 상징 공간인 광화문에 한글이 없는 현실은 국가 정체성에 혼란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복궁이 한글이 태어난 곳인 만큼, 훈민정음해례본에서 집자한 글꼴로 현판을 달면 그 상징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광화문의 진화는 1910년으로 끝났다"
최 전 소장은 광화문 일대의 역사를 꼼꼼히 훑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경복궁 안에 세우고 광화문을 강제 이전한 것부터 1968년 박정희 정권의 철근콘크리트 복원과 한글 현판, 이순신 동상 건립을 통한 이미지 투영, 이명박 정부의 '국가 상징 거리 조성 사업', 오세훈 서울시장의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 구상까지 광화문 일대를 두고 벌어진 권력의 상징 조작을 나열했다. 그러면서 "명분이 무엇이든 이런 식이라면 광화문은 권력자의 놀이터로 전락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문화유산의 본질을 "과거에 그러했다는 것을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물질 증거"라고 정의했다. 시류에 따라 문화유산을 변형하면 역사를 왜곡하고 옛사람의 행위를 부정한다는 논리다. 이를 토대로 한글 현판 추가의 근거로 자주 거론되는 '자금성 한자·만주어 병기' 사례를 반박했다. 청나라는 만주어가 지배 계층의 공식 언어였기에 병기했으나, 조선의 한글은 국가 행정과 교육이 한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평민과 여성이 주로 사용한 문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 근거로 삼았다.
최 전 소장은 영국 왕실 문장의 프랑스어와 소르본대학 성당의 라틴어 비문 사례도 들었다. 영국 왕실 문장에는 "신과 나의 권리"를 뜻하는 프랑스어가 새겨져 있고, 17세기에 지어진 소르본대학 성당에는 '신학의 성스러운 전당'을 뜻하는 라틴어 비문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를 바꾸자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는 "옛사람들의 행위와 문화를 존중하기 때문"이라며 "광화문의 한자 현판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시대 한글은 평민과 여성의 문자였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경복궁 복원의 의미 자체도 다시 짚었다. 최 전 소장은 "경복궁 복원은 서울의 근원을 회복하는 일이자,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한국인의 '집단 기억'을 물리적으로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일제가 조선 궁궐을 훼손한 것이 조선인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집단 기억의 물리적 실체를 없애는 행위였던 만큼, 그 실체를 고증에 따라 되살리는 것이 복원의 정당성이라는 논리다. 그는 "광화문의 진화는 경복궁과 함께 1910년으로 끝났다. 없었던 과거를 창조하는 것은 역사에 개입해 옛사람의 행위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과거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같은 전제, 다른 결론
흥미롭게도 두 발제자는 하나의 전제를 공유한다. 현재 광화문 한자 현판이 온전한 역사적 원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해석은 정반대로 갈렸다. 최 전 소장은 2010년 복원 당시의 배색 오류와 이후 수정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면서도 그것을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으로 평가했다. 이 대표는 같은 사실을 두고 "원형의 진정성을 확신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월 150만원 견디느니, 美 가서 5억 벌죠" 서울대...
이들의 차이는 결국 '광화문을 어느 범주에 놓고 볼 것인가'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 대표는 문화유산의 범주를 넘어 국가 정체성의 범주에서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최 전 소장은 문화유산이 국가 정체성 논의의 재료로 쓰이는 순간 왜곡과 조작의 위험이 생긴다고 맞섰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