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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MP 칼럼]규범을 잃은 포퓰리즘 시대의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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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가문 등 비공식 외교 부상
실용적 협력 기반 자국 이익 추구
위기 상황에 신속 대응 가능하지만
제도 부재에 안보 불안 커질수도

[SCMP 칼럼]규범을 잃은 포퓰리즘 시대의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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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 중심의 거래가 형식적인 외교를 대체하면서 국가 간 관계가 새로운 방식으로 더 유연하게 변하고 있다. 한때 복잡한 의전과 공허한 입장 표명으로 가득했던 외교적 대응은 비공식적 메커니즘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비공개 외교가 작동할 수 있는 여지를 늘리며, 비록 국제법을 강화하는 데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나 안정과 평화의 가능성을 연다는 의미가 있다.


이런 외교 방식의 변화는 유엔(UN) 헌장을 기반으로 한 원칙과 합의의 틀 속에서 국가들을 한데 묶었던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가 부분적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변화의 배경에는 엘리트주의 제도로 여겨지는 기존 국제기구에 반감을 가지며 어떤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포퓰리즘적 정치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1914년 이전 외교 규범으로의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도자 개인에게 집중된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외교로 국가 못지않게 가문과 개인적 인연이 작동하는 외교 형태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는 각국이 별다른 제약 없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한때 이들을 일정 부분 제어하던 주류 국제 포럼과 다자 협의체들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약화됐다. 그 사례가 바로 브릭스(BRICS)의 새로운 연합 구도다. 이 조직은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결속시키며 서방 중심 질서에 도전하는 신흥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긍정적 측면에 주목하면 현재 국가들이 누리는 상대적 자유로움은 새로운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창의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합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례로 중앙아시아와 남캅카스 지역을 가로지르는 아시아·걸프 지역 교역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국가 간 연합체들은 기존의 지정학적 동맹보다 지경학적 필요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일종의 '하이브리드 외교'다. 이는 비공식 논의를 통해 다듬어지고 비공개 채널을 통해 전달된 정책 구상에 자주 의존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자 휴전 합의'다. 이 합의는 중동 및 그 외 지역 국가들의 군사 지원을 기반으로 한 치안 안정화 부대와 이익을 염두에 둔 민간 기업인 중심의 '평화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공공 외교와 사적 이해관계가 뒤섞인 새로운 외교 모델인 셈이다.


이처럼 새로운 국제 질서의 외교적 그물을 짜고 있는 인물들 대부분이 선출되지 않은 자문가 또는 민간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업계 출신 인사들과 가족들을 특사로 기용하며 그 흐름을 주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그의 딸 이방카 트럼프, 그리고 부동산 사업가 스티브 위트코프와 함께 가자 휴전 합의를 끌어낸 뒤 이스라엘 군중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이들은 종종 공식 외교 조직에 속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움직인다. 이스라엘의 시민운동가 게르숀 바스킨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비공개회의 중 남자 화장실 밖에서 위트코프를 우연히 붙잡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협상 방안에 대해 조언했다는 일화를 밝힌 바 있다.

공식 임명된 특사든, 비공식 자문가나 시민사회 활동가이든 간에 현재 세계 질서를 움직이는 주체가 외교장관과 관료조직이 아닌 민간 인사와 비정부기구(NGO)인 셈이다. 이런 변화는 과연 바람직할까.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비공식 거래'가 세계 평화와 안보에 지속적인 영향을 남길 수 있을까.


외교 대응이 신속하게 이뤄진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갈등이 격화되고 국제법의 구속력이 약화된 세계에서 갈등이 확산하기 전 이를 신속히 진정시키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정상에게 직접 전화해 관세·무역 제재를 암시하며 압박했다. 이를 통해 두 나라를 빠르게 휴전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국가 간 관계를 조율하기 위한 접근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바람직하다. 특히 인도양 지역처럼 핵심 해상로와 전략적 요충지가 분쟁 지역과 맞닿아 있는 곳에서는 각국이 비공식 네트워크를 활용해 데이터를 더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는 지정학적 경쟁에 가로막혀 제약받고, 강대국들의 영향을 받기 쉬웠던 영역에서도 자율 행동규범을 만들어가고 있다.


냉전 시기 군사력 중심 동맹과 안보 구도가 약화되면서 세계는 이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역·기술, 나아가 종교·문화 외교의 힘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글로벌 협력망을 구축하는 과정은 카타르·오만·아랍에미리트(UAE) 같은 걸프 국가뿐 아니라 터키·아제르바이잔 등 중견국들과 다양한 민간 조직에도 외교적 발언권을 넓혀준다. 동시에 보다 균형 있고 포용적인 외교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어쩌면 비용적으로도 훨씬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새로운 외교 방식은 투명성이 부족하고 정치적 변덕과 우연에 쉽게 휘둘린다는 단점도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중단 과정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카타르 정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중재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카타르에 머물고 있던 하마스 협상가들을 공격하며 협상 자체를 끝내려 했다. 중동 정세를 잘 아는 이들 중 트럼프 대통령이 잠시라도 이 지역에서 눈을 떼면 가자 분쟁이 곧 재개될 것이란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트럼프가 주도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시도는 양국 중 어느 한쪽의 안전 보장이라도 포함된 제도적 절차가 아닌 개인적인 유인책과 실체 없는 위협(empty threats)에 더 의존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새로운 외교적 지렛대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국가 간 관계를 조율하는 방식은 변하고 있을지라도 힘의 논리와 군사 역학은 변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현재로서는 이에 수반되는 위험보다 기회가 더 커 보인다. 창의적 구상을 기반으로 한 거래형 외교는 기존 외교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폭넓은 합의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자 휴전 협정의 '예스, 벗(Yes, but)' 접근법은 가자 주민들에게 일시적이지만 실질적인 안도감을 제공했다. 이 접근법은 인질 교환에는 합의하면서도 무장 해제나 긴장 완화에 대한 구체적 세부 사항은 확정하지 않은 방식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과 미국 역시 무기 체계에서 인공지능(AI)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핵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제한적 범위에서 군비 통제 협력에 합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양국이 무역과 기술 문제에서는 충돌하고 있지만, 이 같은 실질적 협력은 통제 불가능한 위험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즉흥적이면서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catch as catch can)' 외교 방식은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일까. 분명 위기 대응에 실질적인 접근법을 빠르게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은 유용하다.


그러나 이렇게 즉흥적이고 비공식적인 외교가 어떻게 관리되고 규제되며 새로운 규범 기반의 질서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존재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외교와 국제 협력이 제도화된 것은 비공식적이고 무질서한 방식의 한계를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평화와 안보가 구속력을 가진 공식 동맹과 제도적 틀이 아닌, 인간관계와 불안정한 네트워크 역학에 좌우된다면 사소한 사건이 큰 전쟁으로 번질 위험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이클 바티키오티스 인도주의적 대화센터 수석고문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Diplomacy in the age of populism is fast, fickle and unbound by the rules of old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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