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입후보' '파이널 자폭' '심야 빈집털이'…. 지난 주말 국민의힘에서 벌어진 초유의 대통령선거 후보 교체 파동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 평가다. 비판 수위가 보여주듯 지난 10일 0시부터 같은 날 오후 11시17분까지 채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벌어졌던 장면은 국민들에게 막장의 끝판으로 다가왔다.
지난 9일 오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안갯속이었다.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 중 누가 최종 후보가 될 것인지 단일화 협상을 이어갔지만 논의는 공전됐다. 이후 법원이 김 후보 대선 후보 지위 인정 가처분 신청 등을 모두 기각하면서 환경 변화가 생겼지만 한 전 총리로 후보를 교체하기에는 시간과 명분이 부족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당 지도부는 지난 10일 0시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해 김 후보의 대선 후보 자격을 취소한 뒤 새벽 3시 대통령 후보 등록을 받는다는 공고를 냈다. 새벽 4시까지 32개에 달하는 서류를 제출해 대선 후보로 등록한 사람은 한 전 총리가 유일했다.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그간의 경선 과정을 무시하고 대선 후보를 날치기로 바꾼 셈이다. 정치 선진국은 물론이고, 정치 후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이처럼 비상식적인 대선 후보 교체를 되돌린 것은 당원이었다. 지난 1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대선 후보를 한 전 총리로 교체하는 안건을 놓고 전 당원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부결로 결론이 났다. 결국 오후 11시17분 김 후보의 후보 자격이 복원됐다.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을 만 24시간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대선 후보는 원상 복귀됐지만 당권 장악에 눈이 먼 정당 권력의 부끄러운 단면은 보수의 가치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지난 주말 벌어졌던 정당 흑역사를 기억의 뒤안길로 묻은 것일까. 김 후보는 한 전 총리를 끌어안으며 화합 장면을 연출했고, 국민의힘은 다시 단일대오를 강조했다. 대선 승리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 단일화를 추진하겠다는 정치적 명분을 훼손한 이는 누구인가. 부끄러운 단면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그들만 또 모른 체한다.
12·3 비상계엄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국민에겐 또 다른 생채기가 생겼다. 계엄과 탄핵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커녕 정당 민주주의 기본 원칙마저 내팽개친 정당을 보며 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작아졌다. 그나마 강제 후보 교체로 나락에 떨어질 뻔한 국민의힘을 전국의 당원들, 바로 우리 국민이 심폐 소생시켰다. 국민의힘이 이번 사태를 슬쩍 넘어가려 한다면 국민의 심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한밤의 악몽은 두 번으로 족하다.
최유리 기자 yr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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