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쟁취하는 것만큼 지켜내는 것도 어렵다
"대학생이 민주주의 지켜내자" "안전하게 살고 싶다" "비상 대신 일상으로"
스웨덴 예테보리대 산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가 이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낯익은 사진을 발견했다. 한글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수백 명의 대학생 시위대 사진은 2024년 12월7일 여의도 집회 현장에서 찍힌 것이었다.
기자 또한 그 인파 속에 있던 기억이 났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날이었다. 탄핵안 가결을 찬성하는 인파가 국회 앞으로 몰려들었다. 시위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오래 버텨야 하는 데 벌써 지치지 말자.”
영국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전문분석기관(EIU)도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흔들리고 있다(wobble)’고 평가했다. wobble은 물리적인 불안정뿐만 아니라 감정적 또는 정신적인 동요를 표현하는 단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안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외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줄곧 민주주의 우등생으로 평가받았던 한국이지만, 군부와 결별하고 삼권분립을 철저히 지키며 의회주의적 민주주의 노선을 강화해 온 시스템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가 한순간 후퇴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EIU가 보고서에서 한국 정치의 제도적 맹점이라고 지적한 대로 한국 헌법은 대통령이 비상사태에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연구기관들은 윤 대통령의 계엄이 실패했다고 설명하면서도 계엄 선포 자체만으로도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는 공통된 평가를 했다.
계엄이 해제되고,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외적 신뢰도를 회복하기엔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당연한 줄 알았던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만큼 지켜내는 것도 어렵다.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은 얼마나 더 오래 버텨야 할까.
한국은 과거 군부가 정권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민주화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 가치를 지켰던 경험이 있다. 한국인이 민주적 제도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은 국제 연구기관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강점이다.
지켜온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 위기의 순간이지만,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우리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 누구도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없도록 제도적인 보완이 시급하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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