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尹 최후 진술에 담겼어야 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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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느껴지는 말이 있다. 상대의 아픔을 헤아리는 위로와 공감의 언어. 정치인이라면, 특히 국가 지도자라면 말로 국민을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그냥 생성되는 능력은 아니다. 경청의 자세를 토대로, 자기를 돌아보는 이가 성찰과 위로의 언어를 품을 수 있다.


25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후 진술’을 많은 사람이 기다린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년의 세월, 국가를 책임지던 이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혼돈과 긴장을 해소할, 말의 무게를 지닌 인물이기에 대통령이 꺼낼 얘기를 기다린 것 아니겠는가.

그날 대통령은 67분에 걸쳐서 77페이지 분량의 최후 진술을 이어갔다. 비상계엄 관련 내용만 담긴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으로 일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국정 성과를 열거했다. 실제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문에 어울릴, 국정 전반에 관한 내용이 최후 진술에 담겼다. 경제 지표와 관련한 평가는 물론이고, 개헌 등 미래 구상이 그 안에 녹아 있었다.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된 상황에서 1시간이 넘게 연설할 기회는 흔하지 않다. 그날 대통령이 내놓은 말은 국민의 시린 마음을 달래줄 온기로 다가왔을까.


문제의 출발점인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비상계엄 이후 많은 이가 불면의 밤을 보냈다. 심야에 잠을 뒤척이며, 자다 깨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게 하나의 버릇이 됐다. 새벽에 전해진 지진 관련 긴급재난문자에도 화들짝 놀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상계엄 충격과 공포가 여전히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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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은 사회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넘쳐나는 분열의 언어는 우리 사회를 위협한다. 혐오와 반목이 부모 자식 사이를, 부부 사이를, 친구 사이를 갈라놓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은 더 얼어붙었다. 자영업자는 악몽 같은 연말연시를 보냈다. 장사가 너무 안돼서 폐업하고 싶어도 철거 비용이 없어 가게 문도 닫지 못했다는 이의 사연은 흘려들을 수 없다. 기업은 투자를 주저하고, 개인은 지갑을 닫는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모두를 우울하게 한다. ‘눈 떠 보니 후진국’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를 농담으로만 여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77페이지에 달하는 최후 진술 가운데 단 몇 페이지만이라도 성찰의 자세로 국민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면 어땠을까. 어떤 거창한 약속이나 다짐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국민 여러분, 삶이 얼마나 고단하십니까." 단 한 줄의 말이라도 진심을 담아냈다면 위로로 다가온다.


국정 성과를 홍보했던 페이지의 그 자리에는 국민의 고단한 현실에 관한 대통령의 미안함을 담아냈어야 했다. 성찰의 언어가 결여된 최후 진술은 공허하기만 하다.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기보다는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모습은 할 말을 잊게 한다. 법정에서 이해관계를 다투는 법률가에게는 어울리는 태도인지 모르나 품격 있는 국가 지도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본인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1639만4815명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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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헌법재판소 판단만 남았다. 훗날 윤 대통령이 인생을 돌아보는 날이 온다면 최후 진술을 했던 그 날은 뼈아픈 하루로 다가올지 모른다. 국민이 기다렸던 말을 끝내 하지 않은 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게 만든 날로 기억될 수도 있기에….


류정민 정치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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