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깃불 오면 합시다" 1989년 남북회담中 전기 끊겨…'北 경제난' 징후
통일부, '제6차 남북회담 문서 공개'
"전깃불이 들어오면 합시다"
1989년 3월2일 오전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진행된 남북 고위급회담 2차 예비회담. 남북 양측이 당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팀 스피리트(Team Spirit)'를 놓고 기 싸움을 벌이던 와중에 갑자기 전기가 끊겼다. 정전은 약 10분 동안 이어졌다. 1990년대 들어 극심해진 북한의 경제난을 미리 엿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남측 대표단은 "전력이 좀 어려우신가요?"라고 물으며 "우리는 요즘 전기가 상당히 풍부한데, (북한이) 그런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가 빨리 남북교류를 많이 확대해 가야(하지 않겠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북측 대표로 나선 백남준(실명 백남순)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대표단장은 "전력이야 뭐 우리 쪽만큼 (생산)하는 데가 있나. 우리가 옛날에도 남측에 전력을 보내주겠다고 했다"며 "수력·화력 발전소가 얼마나 많은데…."라고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백 단장은 북한의 '대남통'으로 잘 알려진 백남순 전 북한 외무상이다. 2007년 1월 사망했다. 1990년대 남북회담 당시에는 '백남준'이라는 가명을 썼다고 한다.
남북은 이날 회담 이후에 3차 회담은 판문각의 남측 지역인 평화의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하고 헤어졌다.
통일부는 13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제6차 남북회담문서를 공개했다. 1984년 9월부터 1990년 7월까지 정치·경제·체육 등 분야 남북회담 내용이 담긴 총 2266쪽 분량의 문서다. 이 기간 남북은 5차례의 경제회담, 2차례의 국회회담 예비접촉, 3차례의 IOC 중재 로잔 남북체육회담, 8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을 가졌다.
이 기간 이뤄진 남북 간 대화에는 북한 측이 휴전선 인근의 '콘크리트 장벽'을 철거하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던 내용도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1990년 1월31일 새해 들어 처음 가진 예비회담에서 북측의 백 단장은 "나라 안에 군사분계선이 있는 것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인데, 인공적으로 쌓아놓은 장벽까지 있는 것은 민족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며 "분계선 남측지역에 있는 콘크리트 장벽은 반드시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군은 휴전선 인근에 대전차 방어용 방벽을 구축했는데, 북한 측이 이를 '영구 분열을 위한 인공적 차단물'로 왜곡하면서 대남 비난에 활용한 것이다.
다만 이는 지난해 10월 경의선·동해선 일대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하는 등 물리적 연결고리를 끊어내며 적대감을 표출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북한은 당시 콘크리트 장벽 철거, 팀 스피리트 연습 중지, 남북 정상수뇌급 협상회의 등을 주장하며 실질적인 토의를 거부했고 결국 회담도 성과 없이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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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희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은 "북측이 팀 스피리트 훈련이나 콘크리트 장벽 문제를 제기한 것은 남북회담을 지연시키는 전략"이라며 "1980년대 중후반에는 북측이 실질적인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보다는 본인들 정치를 위한 선전에 이용하려고 나온 것이어서, 실질적인 토의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1980년대 중반은 남북 간 신뢰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라며 "회담 성과보다는 일종의 '대화를 위한 대화' 정도에 머물렀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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