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장편소설 쓸 때 질문들 견디며 그 안에 살아"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가 한강이 여덟 살 때인 1979년에 쓴 시다. 한강은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던 중 여덟 살 때 쓴 자신의 시를 발견했다. 낡은 구두상자 속에서 자신이 여덟 살 때 손수 만든 시집을 발견한 것이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스테이플러로 찍어 중철 제본한 표지에 어엿하게 '시집'이라고까지 적은 책자에는 여덟 편의 시가 담겨있었다. 여덟 살 소녀 한강이 서울로 이사를 앞두고 보물 같은 자신의 시를 정성껏 정리해 보관한 것이다. 여덟 살 한강은 1980년 1월 광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7일 오후(한국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지난해 이사하던 중 자신이 여덟 살 때 쓴 시를 발견한 일화를 소개하며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여덟 살 때 자신의 쓴 시를 보며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돼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강연에서 한강은 미리 준비한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차분한 목소리로 읽었다.
30여분간 이어진 강연에서 한강은 자신의 소설 다섯 편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쓴게 된 과정과 그 내용을 소개했다.
한강은 시와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하지만 짧게는 1년, 길게는 7년이 걸리는 장편소설을 쓰는 일이 특별히 매혹적이라고 했다. 그는 장편소설을 쓰는 동안 자신이 질문 속에 산다고 말했다.
한강은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 된다"며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 좋다"고 했다. 이어 "하나의 장편 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강은 세 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 속에 살았다고 했다.
한강은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덟 살의 자신이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있다고 썼듯 그것이 내 삶에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움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강은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 주었고, 연결되어 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강연을 마쳤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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