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할 관세를 두고 이번 주 중 회원국 투표를 할 예정이다. 당초 지난주 투표를 거쳐 고율 관세를 확정할 예정이었으나 중국 측과 추가로 협상에 나서면서 최종 결정이 미뤄졌다.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지만 당초 호기롭게 중국산 전기차를 배격하려던 움직임은 움츠러들었다. 유럽 경제대국 독일은 무역보복 등을 이유로 공공연히 고율 관세를 반대했다. 가뜩이나 중국 내 판매가 부진한 폭스바겐 등 중국차가 현지에서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EU에서 목소리가 큰 프랑스는 원래 중국과 가깝게 지내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했던 중국 전기차 생태계와의 탈동조화 움직임이 당초 성공할 것으로 전망한 이는 많지 않았다. 반(反)중국 연대는 애초부터 느슨했다. 전기차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배터리 공급망은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원자재 채취·가공 등 배터리 제작 초기 단계는 다른 나라로 수급선을 대체하기 불가능할 정도며 배터리 완제품 역시 중국산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점차 강해지는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전환이 속도를 내야 하는데, 값싼 중국 전기차를 빼면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하다.
전기차를 포함한 여타 미래차 시장 주도권도 중국이 가져갔다고 보는 게 현재로선 합리적인 판단이다. 막대한 내수시장과 애국주의 소비를 등에 업은 채 외형만 커진 게 아니다. 중국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이 가장 앞선다는 바이두의 자율주행차량 아폴로고는 베이징과 후베이성 우한에 대규모 무인택시 선대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4월 기준 누적 서비스 건수로는 구글이 운영하는 웨이모보다 4배가량 많다고 한다. 테슬라 역시 중국에서 자율주행 시범운행 허가를 얻는 데 공을 들였다. 자율주행 성공을 가르는 요인은 개별 업체 차원에서 수집하는 데이터의 양, 아울러 당국 차원에서 인프라나 법·행정적 제도를 얼마나 뒷받침하느냐다.
글로벌 메이커 역시 중국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졌다. 현대차가 3년 전 설립한 중국 선행디지털연구소는 현지에서 기술·상품 수요조사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 과거 본사에서 개발한 기술을 중국 공장으로 내려보내 생산하는 구조였다면 이젠 눈높이가 높아진 현지 수요를 조사하고 거기 맞춰 개발해 거꾸로 해외 각국에 적용한다는 얘기다. 현대차가 한창 개발 중인 주행거리연장형 전기차(EREV) 역시 중국 시장에서 수요가 있다는 걸 보고 뒤늦게 뛰어든 분야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타도 중국’을 외치는 것과 달리 제너럴모터스(GM)나 포드는 중국 배터리 기술을 도입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과거 미국 빅3 가운데 하나였던 크라이슬러가 속한 스텔란티스는 아예 중국 전기차 회사 링파오와 합작사를 차렸다. 메르세데스 벤츠나 볼보 등 대주주가 중국계 자본인 회사가 중국 내 공급망을 적극 활용한 건 이미 한참 지난 얘기다.
미국이 중국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매기고 중국산 부품을 쓰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나섰으나, 이러한 조치가 미봉책이라는 걸 대다수는 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자국 자동차 기업에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을 테다. 이마저도 반중 연합전선에 균열이 생기면서 흐지부지될 조짐이 뚜렷해졌다. 과거에 견줘 주춤한다고는 해도 우리와 중국의 자동차 산업은 긴밀히 얽혀 있다. 적대적 대치보다는 건설적 경쟁의 장이 펼쳐지길 바란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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