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 도시의 재미를 찾아서]
<2>'노잼도시' 프레임에 갇혀버린 도시들
① 노잼도시 확산 배경된 대전…성심당은 '양날의 검'
정주여건 좋고 콘텐츠 많지만…외지인은 '당일치기'
"여행 계획이요? 성심당 하나 보고 왔는데요."
7월 23일 오전 9시, 대전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빵집 성심당 본점에는 개장과 동시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본점 옆 케이크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성심당 부티크'도 마찬가지였다. 가게가 인접한 대로변에 총알택시들이 줄이어 도착했다. 비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 사람들은 우산도 채 펴지 않은 채 택시 문을 열고 달려 나와 가게 앞에 줄을 섰다.
여름 한정 케이크 '망고시루'를 사러 왔다는 25세 이지민씨는 "새벽부터 인천에서 왔는데 이 정도면 안 늦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성심당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없다. 케이크 사러 왔으니 이제 다시 밥 먹고 인천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답했다. 성심당이 있는 으능정이 거리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임대 딱지를 붙인 공실 상가였다. 행렬과 대비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대전=성심당' 공식으로 지역 방문객 늘리는 데는 '성공'
'대전은 곧 성심당'이라는 공식이 각인되면서 대전은 오히려 '노잼도시'로 불리는 1순위 도시가 됐다. 성심당을 빼면 별 볼 일 없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노잼도시라는 수식어는 최근 대전의 관광객 유입에 정반대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전을 둘러싼 노잼도시 논란이 시작된 이후 "대전이 정말 성심당 빼면 재미가 없는지 직접 보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대전 어느 동네를 가나 골목에는 성심당의 초록색 케이크 상자와 갈색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외지인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날 대전역 인근에 마련된 트래블라운지에는 평일 오전 8시 30분이라는 이른 시간에도 친구, 연인과 함께 있는 20대들이 2~3팀씩 들어왔다. 대부분 대전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가 성심당이 문을 열기 전 시간을 보내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트래블라운지 관계자는 "이곳이 2020년 생겼을 당시에는 사람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주말에 300~400명이 방문할 정도로 관광객이 많다. 매년 늘어나는 것 같다"며 "노잼도시라는 타이틀이 대전에서는 오히려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전했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의 지역별 방문자 수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0년 대전을 방문한 외지인의 수는 6949만5994명, 2021년 6914만2326명이었다가 2022년 7567만4507명, 2023년 8218만9941명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노잼도시와 성심당이 대전의 수식어로 자리 잡으면서 생긴 변화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 둔산동에서 소품샵을 운영하는 20대 육영채씨는 "성심당에서 딸기 시루 등 계절 한정 메뉴가 유행할 때면 우리 가게도 갑자기 손님이 확 늘어난다. 인근 상점들도 비슷하지 않겠느냐"며 "노잼도시라는 별명이 기분 나쁘지 않은 이유는 그래도 이제 대전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심당 다음 행선지가 없어…양날의 검 된 '성심광역시'
문제는 성심당 이외에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대전의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관광공사의 '2023년 대전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전을 방문한 여행자 중 84.5%가 '당일치기'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박까지 하면서 머무를 관광요인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외지인 방문으로 지역 경제 창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체류 시간을 늘리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 관광 전문가들은 숙박 등의 관광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대전관광협회 관계자는 "대전은 경주와 달리 수학여행 등 단체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 인프라가 없다. 대전을 다들 당일치기의 도시로 생각하는 이유"라며 "숙박-체험-관광으로 이어져 체류시간을 늘려야 소비도 늘어나고 여러 가지 효과가 함께 발생하는데, 이것이 되지 않으니 관광산업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는 대전의 지리적 특성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앙 내륙에 위치해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는 이점이 있으나, 이는 강릉이나 양양 같은 바다, 서울 한강 등 자연경관으로 찾아올 관광지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카이스트(KAIST), 대덕연구단지 등 대전이 가진 또 다른 '과학도시'의 이미지도 실질적으로 체험이 불가능한 정적인 요소다.
대전 성심당과 주변 은행동 상가의 상생 프로젝트 '으능이랑 성심이랑'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성심당 주변 도로에 걸려있다. 참여하는 업체에 성심당 영수증을 제시하면 다양한 혜택을 주는 행사다. 사진=허영한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이렇다 보니 대전을 방문한 여행객들은 성심당만 찍고 돌아가거나, 성심당 인근의 식당과 카페만 돌아다니는 '먹거리 체험'으로 나머지 일정을 채우곤 한다. 이날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친구가 대전사람이라 당일치기하러 왔다"며 "성심당 갔다가 대전에서 유명하다는 두부 두루치기를 먹고 맥주 축제 가보고 막차를 타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갈리단길'로 불리는 갈마동 카페거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노모씨는 "성심당의 인기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 물론 대전에 와도 카페밖에 갈 곳이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대전을 정말 찍고 가는 수준으로 방문하는 사람이 많아 아쉽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성심당이 위치한 으능정이 거리에는 임대 딱지가 붙은 공실이 한 가게 건너 하나 있다. 인근 상인들 사이에서는 "성심당 근처 50m 반경에 카페는 절대 차려선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심당과 성심당이 운영하는 카페, 레스토랑 등이 모두 인근에 밀집해있기 때문이다.
정주 여건 좋고 콘텐츠 많아…다른 정체성 발굴 필요
대전시 주민들은 대전이 성심당 이외에 다른 콘텐츠가 많고, 정주 여건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노잼도시라는 단어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대전 토박이로 갈리단길에서 카페 '젤리포에'를 운영하는 20대 맹세현씨는 “원래 대전은 성심광역시 이전에 과학도시다. 대덕연구단지가 위치한 전민동에서는 김 박사님하고 부르면 길 걷던 어른들이 너도나도 뒤돌아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스마트한 이과 도시의 이미지에 더해 사람들도 순하고 동네 어디를 가도 하천이 흘러 산책하며 걷기 좋은 잔잔한 도시"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전을 중심으로 성장한 야구팀 한화 이글스도 주민들이 손으로 꼽는 볼거리 중 하나다. 이날은 한화와 기아 타이거즈의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오후 늦은 시간대가 되자 경기를 직관하러 한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도시 곳곳이 북적였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콘텐츠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꿈씨 패밀리', '대전 0시 축제'가 대표적인 예다. 1993년 대전 엑스포의 마스코트 꿈돌이는 한때 잠깐 추억 소환으로 주목받았다 지금은 주춤한 상태지만, 그동안 대전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대전광역시는 꿈돌이 세계관 확장을 위해 시민 공모 사업으로 꿈돌이 가족의 새 캐릭터를 모집하는 등 지원에 나섰다. 그 결과 꿈순이와 가족을 꾸린 꿈돌이는 어느새 네 아이와 반려견 한 마리를 먹여 살리는 가장으로 변모했다. 올해부터는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대전발 0시 50분'이라는 대중가요 '대전 부르스'를 모티브로 전 연령층을 어울리게 하는 0시 축제도 연다.
사실 대전은 정주 여건이 좋은 살기 좋은 도시기도 하다. 얼마 전 사단법인 한국지역경영원이 실시한 대한민국 지속 가능 도시 평가에서 유성구는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교통의 요지인데다 갤러리아 백화점, 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 등 복합 쇼핑몰도 있어 지역 주민의 편의도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성심당이라는 하나의 랜드마크 이외에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소개할 홍보, 그리고 정체성 발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시는 입체적인 공간이고, 여러 이면을 발굴하면서 재미가 생긴다. 랜드마크 하나만 기억된다는 것은 일장일단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도시 자체에 별로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성심당으로 출발해 여러 지역 문화를 덧입히고 서사를 채워가는 방향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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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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