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대신 직접 심판" SNS 확산
수사기관 수사 절차 불신
‘정의구현’ 명목으로
유튜브 등서 신상공개 빈번
엄연히 현행법 위반
무관한 피해자 발생 우려도

최근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범죄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는 '사적제재'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른바 '정의 구현'에 나서겠다며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으나, 엄연히 불법인데다 자칫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사적제재가 하나의 사업성 콘텐츠로 변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협박범 신상공개 합니다"…도 넘은 '사적 제재'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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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SNS…외도·피의자 신상 확산 창구

지난해 12월 30일 한 유튜버는 자신의 채널에 20대 여성 A씨의 사진 3장과 함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해당 여성은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받던 중 숨진 배우 이선균씨를 협박해 5000만원을 받아낸 혐의로 12월 28일 경찰에 구속됐다. 유튜버는 A씨에게 사기, 협박 피해를 본 사람의 제보를 기다린다고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A씨 관련 게시글은 3일 기준 3900개의 댓글이 달렸고 4만5000회의 추천 수를 기록했다. A씨의 신상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상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A씨의 얼굴과 이름이 적힌 게시글이 3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숏폼 콘텐츠도 사적제재 성격의 게시글이 확산하는 창구가 됐다. 온라인상에 게재된 정보를 일부 유튜버들이 1분 길이의 짧은 영상으로 재가공하면서 정보를 퍼지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A씨의 신상이 담긴 유튜브 숏폼 콘텐츠 또한 3일 기준 139만 조회 수를 보였다.


개인 간 외도 문제도 사적제재 타깃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상견례를 앞둔 한 남성이 예비 신부 B씨의 외도를 목격했다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 게재한 뒤 해당 여성과 가족의 사진을 포함한 SNS 계정 정보가 온라인상에 빠르게 확산했다. 결국 악성 댓글에 시달린 B씨의 가족은 SNS 계정을 닫았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신상 공개는 명백한 불법이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에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명예를 훼손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허위사실을 게재했을 경우 처벌 수위는 더 높아져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사실과 다른 정보가 확산해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지난해 9월 대전 유성구의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사망하자 일부 자영업자의 가게가 가해 학부모들의 가게로 잘못 알려지면서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한 갈빗집 사장의 조카라고 밝힌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마녀사냥을 멈춰줄 것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해당 네티즌은 "살인자 등 욕설과 별점 테러가 이어지면서 삼촌께서 놀라시고 상처를 받으신 상황"이라며 갈빗집의 사업등록자와 함께 가해 학부모와 상관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족관계 증명서까지 첨부하기도 했다.


"수사기관 불신…사적제재 원인"

사적제재가 횡행한 배경에는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수사기관의 수사 절차를 국민이 신뢰하지 못할뿐더러 국민의 법 감정과 실제 판결 간에 괴리도 크다는 것이다.


실제 SK커뮤니케이션즈가 지난해 10월 성인남녀 774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9%(3856명)가 사적제재는 적절하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44%는 강력범죄에 한해 사적제재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미지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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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는 "공명심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우리 형사 사법 제도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며 "한국의 사법제도는 피해자의 권리구제가 아닌 피의자의 헌법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측면이 커서 국민 불만을 자아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사법제도가 가해자 처벌 중심에서 피해자 보호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이나 응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사적제재가 만연해지면 사회에 불신이 팽배해지기 때문에 국민들이 다른 정책에도 신뢰를 갖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적제재 콘텐츠화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일부 유튜버들에게 사적제재는 사실상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라며 "이들이 제시하는 정보의 진위를 판단할 주체가 없을뿐더러 거짓 정보일 경우 피해 확산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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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교수는 "피의자의 신상공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하는 행위와도 같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할 뿐만 아니라 위법한 콘텐츠는 삭제·차단 조치를 내릴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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